하늘을 나는 타이어
이케이도 준 지음, 권일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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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용서받는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개인들의 치열한 싸움


"알아. 하지만 말이야, 조직이라는 게 나 혼자 아등바등해봐야 어쩔 수 없는 때도 있거든."

"그건 거짓말이야."

에리코가 일축했다.

"어떤 조직도 누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 모든 사람이 '나 혼자 애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체념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다.

누가 보아도 승패가 분명해 보이는 이 싸움의 끝은 어떨까?

이 소설은 2000년 발생한 '미쓰비시 자동차공업 승용차 리콜 은폐 사건'을 바탕으로 한 사회파 소설이다. 저자인 이케이도 준의 '대기업이면 무슨 일을 해도 용서받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먼저 두꺼운 두께인데도 휙휙 넘어가는 간결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가 좋았다. '사회파 소설', '리콜 은폐 사건'등의 무게감 있는 수식어로 인해 읽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800쪽을 읽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다각도로 보여주는 사건의 전개, 각 인물들의 입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작가가 많은 고민과 조사를 거쳤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살아남기 위해 사회 정의를 접어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하는가."

소설을 읽으며 치밀한 구조에 많이 감탄했다.

이 책은 서장에 등장인물 표가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사건의 중심인 호프자동차와 아카마쓰운송을 중심으로 도쿄호프은행과 하루나은행, 일간지, 경찰까지 기업과 관련된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각 조직에 속한 개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좋았다. 은행, 일간지, 대기업의 부서에 속한 개인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얽히고, 마침내 이들의 힘이 어떻게 굴지의 대기업과 맞서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렇게나 복잡한 현실적인 조직구도를 하나의 이야기에 담아내다니.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다니.

초반, 가볍게 넘어가는 책장에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방심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사건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는 것,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루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깊이까지 얕지는 않은 소설이었다.

"자네가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올바른 방법으로 도출한 판단이라면 이유 없이 굽히지 마."

이 소설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개인들의 힘을 그려내었다.

아카마쓰 사장은 희생당한 가족에게 연민을 품고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발로 뛰며 고군분투하는 전형적인 영웅적 주인공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카마쓰와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는 회사를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들의 아주 작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가 모여 대기업과 맞설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정의를 가장 귀중한 가치로 생각하지만, 모두가 정의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죄책감 때문이든, 과시하고 싶다는 욕심에 의해서든, 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든 옳은 일에 조금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동인이야 뭐든 그 행위 자체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걸 확인하게 해 준 책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현 사회에서 대기업은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성 같다. 자본이 가장 큰 가치인 사회에서 가장 큰 자본을 가진 조직은 무너져도 무너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그 문을 밀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열 사람이, 백 사람이, 수많은 사람이 맞서기 시작하면 성에는 균열이 시작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직의 이름 아래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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