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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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는 깊게 숨을 내쉬고 긴장을 풀었다그리고 마침내 한마디 말을 떠올렸다인류를 온갖 부질없는 다툼으로부터 구원해 낼 절호의 한마디를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조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와서 기뻐."

 

문학사 길이 남을 위대한 작가이자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딸들에게 이야기를 여럿 들려주었지만그중 기록으로나마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고그나마도 절정 초입부에서 끊긴 미완성작이었다.

그리고 이 기록이 담긴 노트는 2011캘리포니아 대학의 마크 트웨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된다.

이 걸출한 문호의 미완성작을필립 스테드와 에린 스테드가 이어나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은 마크 트웨인이 딸에게 남긴 단 한 편의 동화이다아버지의 애정과 문호의 재능이 담긴 채 기록으로만 남은 이 이야기를칼데콧 상을 받은 필립 스테드가 이어나갔고에린 스테드가 삽화를 그렸다.

동화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원작자가 마크 트웨인인지라 시작부터 흥미를 끌어당기며 범상치 않은 문장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구성도 굉장히 독특한데글을 쓴 필립 스테드가 마크 트웨인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동화의 내용과 번갈아 가며 등장하기 때문이다그래서 트웨인이 이 이야기를 완성하지 않고 사망했다는 '어른들의 사정'트웨인이 차를 마시다 어딘가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센스 있게 순화한다.

 

때로 신들은 예정에 없던 휴가를 가기도 하고잠시 본분을 망각하기도 해.

그사이 비참한 사람들의 삶은 잠깐이나마 덜 비참해지지.“

 

책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둘이서만 사는 가난한 소년 조니이다.

이 소년은 세상 무엇보다도 강한 이빨과 냉혹함을 가진 가난이라는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데거기다 할아버지조차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불행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그런 조니의 처지를 설명하듯조니의 유일한 친구인 닭의 이름은 '전염병과 기근'이다.

 

할아버지는 전염병과 기근을 팔아 먹을 것을 사 오라며 조니를 먼 도시로 보낸다그러나 조니는 그 닭을 팔지 말고 자신에게 달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조니는 닭을 행복하게 해 달라며 자신의 친구를 넘긴다.

모든 옛이야기가 그렇듯 이 할머니는 요정이었는데닭의 보답으로 조니에게 씨앗을 건넨다.

요정의 보은이 늘 그렇듯이 씨앗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요정의 말에 따르면이 씨에서 피어난 꽃을 먹으면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조니는 요정의 말대로 씨앗을 잘 키워 꽃을 먹었는데꽃에 요정이 말한 그런 효능은 없었다.

대신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조니는 인간 세상을 떠나 동물들의 곁으로 가게 되는데어느 날 평화로운 숲에 올레오마가린 왕자가 도난되었다는 방이 붙는다.

 

세상 사람들은 동물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거고.“

 

올레오마가린 왕자 '실종 사건'이 아니라 '도난 사건'이라는 점이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은 타이틀답게 마냥 가볍지많은 않다.

환상적인 동화라는 껍질을 까 보면 어두운 사회라는 과즙이 흘러내리니 말이다.

(당장 주인공 조니의 처지부터 상당히 절망적이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동화 특유의 밝은 빛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조니는 깊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리고 마침내 할 말을 떠올렸다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들을 구원해 낼 절호의 말을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나는 너무 커 버린 것은 아닐까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버린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들은 으레 작고아래쪽에 있는 법인데내가 너무 크고 높아져서 그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허리를 굽혀 조니의 시선으로 상대를 보면서진심으로 말해 보고 싶어졌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기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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