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태어났으니 산다 - 열심히 살기는 귀찮지만 잘 살고는 싶은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
해다홍 지음 / 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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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나의 모습을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증거라며

자신을 속여왔었다.

그렇지만 한시적인 해소감의 끝엔

허무함뿐

정말 필요했던 건

상처를 스스로 돌볼 시간이었다."


네컷 만화 그림 에세이일단 태어났으니 산다이다.

 원래 독립출판물이었는데높은 인기에 힘입어 다산북스에서 새옷을 입고 재출간되었다고 한다. 

판형은 흔치 않은 정사각형 판형가로세로 딱딱 맞춰 떨어지는 네모가 엽서 같기도 하고폴라로이드 같기도 하고독특하면서도 귀엽다.


표지 커버를 벗기면 또다른 커버가 드러난다이런 반전매력좋다.

판형만큼이나 시선이 가는 게 제목이다.

 힘든 일에 부딪힐 때마다 한 번쯤 생각했던, '나 왜 살지'라는 질문에 '태어났으니까혹은 '살아있으니까우스갯소리로 답하곤 했다반은 장난이었던 그 대답을 이렇게 제목으로 달고 나올 줄은.

 '일단 태어났으니 사는 삶'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여 책장을 열어 보았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체.'

 그림은 동글동글단순하면서도 귀여운그러면서도 시선을 끄는 그림이다.

 (이모티콘이나 팬시로 나와도 좋을 듯한 그런 그림)

 

사는 데 문제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무기력하고 또 가끔씩은 우울한 우리를 위한 책이었다.

 읽으면서 '뭐 애써 긍정적으로 살 필요 있나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사는 거지싶었다.

 저자는 강아지 '누룽지'와 둘이서만 산다귀찮아하는 것도 많고일도 잘 미루고무언가 도전할 용기는 조금 부족한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인 저자가 살면서 느끼고 스쳐간 생각의 조각들감정의 편린을 표현한 책이다.

 아무리 무난하고 잔잔해 보이는 인생이라도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작가는 그런 인생을 살면서 조금 버거운 부피로 옆에 쪼그리고 않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모아 두었다.

 

"그저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런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실 그런 자유가 제일 갖기 어려움을

새삼 깨달아가는 요즘

열심히 살고 싶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살다 가자고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뭔가 해보고 후회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는 몰랐다그게 내 힘이 아닌 나를 짓누르는 돌덩이가 될 줄은.

뭔가 '하고 있는느낌이 들지 않으면 무서울 정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핸드폰으로 정보를 찾아보고입시를 거칠 때 달고 살던 헛구역질이 다시 도지기도 했다.

겨우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할 일을 만들어야만 안심하는 타입나는 내가 못 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렴풋 깨달았다.

(지금도 학교생활 하면서 대외활동만 대여섯 개 뛰는 걸 보면)

내 친구가 말하길나는 지옥에 떨어져서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며 의견 낼 사람이라고...

다른 친구가 이번 학기 고생했으니 이번 방학은 좀 쉬라고 말했다난 내가 못 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안다내가 생각해도 난 참 희한한 사람이다. 

책을 읽고 참 비겁한 위안을 받았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힘내기도 참 지겹다- 

그닥 힘내기도 싫고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쥐어짜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워"

 

처음으로 20대가 되었을 때 주변 어른들이 다들 그렇게 말했다.

많은 걸 경험해 보고 되든 안 되든 도전해 보라고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본 사람의 결과는 이거다.

아 휴학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보랬으니까 휴학도 해도 되겠지

 

참 이상하게도전하라고 즐기라고 해 보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많은데,

이제 좀 쉬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한 명도 못 봤다.

힘들다고 해도 뭐가 힘드냐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힘들다고 현수막을 써 붙이면 좀 알아줄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그 사람한테 내가 힘들다는 걸 납득시키기도 힘들어서 관두기로 했다)

사람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살 수는 없다사람이 끊임없이 도전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힘내기도 참 지겹다.

 

"타인은 순간을 함께할 뿐

나의 매 순간에 함께 있어줄 순 없어

기본 값은 홀로 있는 상태인 거야

그러니 어쨌든 외로움과 친숙해져야 한다구..."

 

이 책은 이런 책이다.

조금 모자랄 만큼 행복하고 조금 넘칠 만큼 우울한 인생에서우울에 발을 담그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

예민하고우울하고귀찮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딱히 숨기지 않는 이야기이다.

아마 그냥 줄글로만 풀어냈으면 그리 손이 가지 않았을 텐데, 4컷 만화와 귀여운 그림이 어느 정도 중화 작용을 해 줘서 그리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무거움'의 나머지 부분은 독자 개개인의 무거움으로 채울 테니.

왜 사는지도 모르는 인생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펼쳐 들면 아마 같은 우울로 위로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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