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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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창비청소년문학상 12회 수상작, 페인트이다.

 창비청소년문학상에는 특히 남다른 관심과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처음 창비청소년문학을 접했고, 그 이후로 수상작은 거의 다 찾아 읽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아주 만족스러웠기에 '믿고 읽는' 몇 안 되는 수상작 중 하나이다. 내 롤모델 작가님도 이 상을 받으며 등단하셨기에 내게는 더욱 특별하다. 언젠가 꼭 내가 타고 싶은 상이기도 하고.

 

이번 작품은 가까운 미래,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이를 모두 국가가 맡아 기르고, 아이들은 NC라는 시설에서 자라며 때가 되면 부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때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아이들끼리 '페인트'라는 은어로 부른다.

 제누 301은 열일곱이 되도록 부모를 선택하지 않은 청소년이다.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않으면 홀로 시설을 떠나야 하고, NC 출신이라는 기록이 계속 남아 차별의 대상이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제누는 아직 마음에 드는 부모를 찾지 못했다.

 어른스럽고, 냉소적이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구석을 가진 제누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부모 면접이 시작된다.

 

먼저, '재미있었다.' 술술 넘어가는 소설이었고, 전개도 매끄러웠으며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좋은 작품을 읽었다는 좋은 기분이 가슴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

 가장 독특했던 점은 국가가 기르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NC 센터였다.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고아원을 연상하기 쉬운데, 보통 이러한 국가시설이 어두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 NC 센터는 제법 밝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이들 각각의 영양 상태에 맞는 식단과, 건강 상태를 신경 쓴 운동 스케줄, 아이들의 오락을 위한 VR,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일하는 헌신적인 가디언들까지. 게다가 최종 부모 선택권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정말 괜찮은 시설 아닌가. 이런 점에서 클리셰를 비틀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짧은 분량 속 다양한 부모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아닌 보조금이 목적인 부모, 누구보다도 아이에게 헌신적인 부모, 미숙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은 부모,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등. 모든 부모의 모습이 자세히 다뤄지지는 않지만 '부모''가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 동화책이나 만화에서 소재로 몇 번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문학에서 다룬 작품은 처음이지 싶다.

모든 사람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나고,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가족이 된다. 내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겁나면서도 설레고 신기할 것 같다.

읽으면서 가족과, 부모와, 아이의 관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하고, 혼자 눈물을 훔칠 만큼 서로 상처받기도 하고, 그럼에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그 더없이 미숙하고 처연한 관계를.

부모를 선택할 수 있듯 없든, 모든 고난을 함께 넘을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반드시 맞이해야 하는 이별의 때에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흔치 않은 소재에, 그 소재를 잘 살렸으며 독자를 마지막 장까지 이끄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이 작품이 좀 더 길었으면 했다. 제누의 이야기를 좀 더 길게, 깊게 지켜보고 싶었다.

홍보 문구는 '완득이, 아몬드에 이은 또 하나의 결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의 명성을 충분히 이을 만한 작품이며, 창비청소년문학은 이렇게 또 하나의 대표할 만한 작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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