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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평점 :
"나는 예쁘고 아무 생각 없는 별이 되는 대신 부끄러운 유기아동이 되어서 세상의 몫이 되어야 마땅한 창피함을 대신 짊어졌다."
당당하고, 똑똑하고, 독특한 아이 '윤설'의 이야기인 『설이』이다.
저자는 심윤경, 자전적 성장소설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주인공 설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풀잎보육원 앞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설이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벌어진 이 일은 설이의 삶을 정의하는 가장 큰 부분이 되어 버렸다.
설이는 세 번 파양당해 함묵증을 앓은 경험이 있고, 올해 열세 살이 되었으며, 졸업을 앞둔 지 얼마 되지 않아 세 번째 파양을 당하는 바람에 우상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설이에게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설이의 삶은 많은 부분이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굴곡져 있었다. 설이 주변의 어른들은 설이를 멋대로 이곳저곳에 보내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거나 멸시한다. 설이가 쌓아 온 것들을 마음대로 정의하고 누가 정했는지 모를 세상의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했다.
한때 잠깐 내게 머물렀다 금방 떠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 내게도 분명 저런 것들이 요구되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했고, 그때 그렇게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어른이 되었다.
해야 한다고 하니까 했던 나와는 달리 설이는 자기 자신을 확실히 붙잡은 채, 그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당당히 반항하기도 한다. 화장을 하고, 집을 나오고, 어른들의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거나 흘겨보는 것은 반항이었기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설이의 노력이었다.
어느 작품에서 '나는 이제 세상을 바꾸지 못한 죄를 물어야 하는 나이인 게지.'라는 문장을 읽었던 적이 있다. 나도 어느새 그런 나이에 발을 들이고 만 걸지도 모른다.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얘야, 제발 어른 말을 좀 들으렴!"
실제 이 대사가 나왔던 적은 한 번밖에 없지만, 그동안 등장한 모든 어른들이 설이에게 늘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눈으로, 표정으로, 규칙으로 늘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나마 예외는 설이의 위탁모인 이모 정도였을까. 설이의 생각, 개성, 가치 등은 어른들의 가진 것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잔머리라고 정의되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다. 어른들이 보기에 어리고 미숙할지라도, 어린아이들에게도 분명한 생각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있고, 그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한 아이이자 한 사람을 구성하는 그것은 어른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친다.
그래, 내 모습과 같았다.
절대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나는 8살 어린 내 동생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고, 이 책을 읽으며 그 점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어린애의 의견보다는 어른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그렇게 은연중에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그렇게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 내 동생에게, 모든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아이'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내 의견이 네 의견보다 우선될 이유 같은 건 없다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어른과 아이의 의견이 상충될 때는 언제나 어른의 의견이 우세하다. 어른은 아이보다 더욱 분별력이 있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아이에게 더욱 좋은 선택을 내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설이가 보여 준다. 한 명도 예외 없이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에게 설이는 분명히 외친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에요!"
"내 안에는 삶이 나에게 가져다준 억울함의 휘발유 통이 가득 쌓여 있었고, 목구멍 아래에서 그것의 알싸한 냄새를 느끼곤 했다."
또다른 아이인 시현 역시 설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희생양이다.
시현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님에게 중요하지 않고, 부모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현에게 의미 없는 것이다.
물론 가족끼리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럴 땐 잘 풀어나가면 된다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현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마스터키는 시현의 손에 주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시현 역시 아이이고, 설이와는 또 다른 입장의 희생양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잠깐 이 아이에게 묻고 싶다.
설이에게 사과는 했느냐고.
시현은 설이를 못살게 괴롭히고, 자존심을 짓밟고, 설이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이후 두 사람이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시현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는다. 별거 아니라고들 하는 그 한 마디가 중요하다. 미안하다고, 이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이런 시현과 우상초 아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희생양이 되어, 더 큰 괴물의 가능성을 품은 채 자라는 모습을.
우상초 반 아이 중 한 명은, '아버지가 필리핀 가정부가 말을 안 듣는다며 배를 걷어찼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한다.
아이라는 사람은 가능성의 집합체다. 어른들이 그 가능성을 멋대로 재단한 결과, 의도하지 않았던 품지 말아야 할 가능성이 생겨나고 말았다.
시현은 그 대표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그걸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 책이 길이 되고 빛이 되었으면, 아이들 전체가 함묵증을 겪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의 말길을 환히 비춰 주었으면.
"넌 항상 네가 원하는 걸 알고 그쪽을 찾아가거든.
나침반은 처음엔 원래 많이 흔들리지만, 결국 옳은 방향을 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