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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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에 조금씩 벽이 열리고 문이 열리고

이젠 혼자서 밤길을 걸을 수 있어요

나는 더이상 영혼 없이 태어난 아이가 아니에요

-<슬픈 모유>

 

창비시선 426번으로 이름을 올린 나희덕 시인의 신작, 파일명 서정시이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종이감옥

2부 눈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3부 주름들

4부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1부는 표제작 '파일명 서정시'가 수록된, 말 그대로 나희덕 시인이 창작한 서정시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제2부는 실제 존재하는 사건, 역사 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쓴 시의 모음으로, 가장 읽기 힘들면서 눈물짓게 했던 부분이었다.

3부는 '아버지''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희덕 시인이 자전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4부는 다시 서정시로 돌아오는데, 이제 서서히 작별을 고하는 듯했다.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1부 종이감옥 <탄센의 노래>

 

1부는 아름답고 처연했다. 시를 읽는 동안 탬버린을 치며 모닥불 주변을 맨발로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무질서한 말로 가득한 구덩이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시는 모두 한 사람이 쓴 것 같기도 했고 각자 다른 사람이 쓴 것 같기도 했다. 따뜻하고 냉랭했으며 두 팔로 감싸안는 것 같더니 어느새 매몰차게 내치는 것 같기도 했다. 글자를 두른 토끼에게 이끌려 시어의 오솔길을 걷고, 빙하를 넘었으며, 사막을 지났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깨달을 때도 있었으나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으며, 뜻은 모르나 마음이 이미 알아차린 시도 있었다.

시는 이렇듯 가장 제한된 언어와 형태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2부 눈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난파된 교실>

 

여기가 어디지요?

죽은 줄도 모르고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묻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마리를

잃어버린 영혼인 듯 따라갑니다, 들린 발꿈치로.

-2부 눈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들린 발꿈치로>

 

2부는 1부에 비해 대상도 메시지도 명확했다.

정제되고 함축적인 시어로 표현되었기에 더욱 읽기 힘들었다.

우리는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역사를 만들어내고 역사에 휩쓸리고 역사를 부수며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직접 피부로 겪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목으로 터져라 부르짖은 일이 아닌가.

내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흘린 눈물에 비하면 너무도 가벼웠다. 모두가 각자의 울음을 울었고 각자의 눈물을 흘렸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로 소리쳤다.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2015 한일합의 이후 10억엔으로 세워진 화해치유재단이 공식적으로 해산된 날이기 때문이다. 소녀상 발아래 그림자에 깃든 하얀 나비가 날갯짓했다.

 

이제 누구의 아내도 아닌

늙은 소녀

 

그녀의 주름 속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들은 이내

익숙한 고통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3부 주름들 <주름들>

 

몇 편 읽고 어쩌면 저자의 서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에 작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시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읽은 시와 말을 어떤 생애의 실로 자아내왔는지 어렴풋이 보여주는 듯했기에.

시련 없이 살아온 사람은 없다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달랐다.

나는 다시 한번 모든 이들의 생애에 경배를 올렸다.

 

나이-톰보-톰보, 그곳은 바닷가에 있지

거룩한 산에 다다른 영혼이 뛰어내리는 바위,

바다에 옛 노래가 울려퍼지면

그제야 죽음이 임한 걸 알게 된다지

-4부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 <나이-톰보-톰보>

 

책의 마지막 장이다. 책을 덮으면 영원히 끝날 것 같으면서도 영원히 계속될 것 같기도 했다.

독자가 가닿을 수 없는 작품 속 바다에서 계속 노를 저어 가고 있을 것 같았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반짝이는 무언가를 향해, 끝나지 않을 항해를 시작하는 듯했다.

내용은 1부와 비슷한 서정시 같으나, 이번 장에는 '시인으로서의 저자'가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시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고뇌하고 창작하는 그런 사람이 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다고, 그 험난한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시는 늘 과거의 이야기였다. 윤동주, 백석 등 과거 사람들의 시를 읽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몇 세기가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사람들의 언어로 쓰인 과거의 언어였다. 그래서 시는 늘 내게 있어 추억 속의 무덤과 같았다.

이번 책을 읽고 처음으로 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의 살아 있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사람이 쓴 지금의 언어가 처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시는 과거에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나 시간의 곁에서 걷고 있었음을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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