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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장황하면 이긴다’는 게 사훈이라도 되는지 이정서 씨께서
또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문을 올렸군요.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제기된 중요한
질문들에는 답을 않고 회피하시다가, 급기야
백여 개의 댓글을 삭제하고 접근을 막아놓더니, 무슨 심보인지 다시금 김화영 선생을 끌어다 욕을 보입니다. 그런데 양심과 자존심을 갖춘 카뮈 번역자라면 자신의 해석에 대해 "요상하다" "끔찍하다"고 평한 프랑스 카뮈학회와
담판을 짓는 게 올바른 대응 아닌가요. 프랑스 쪽의 해석과 자신의 해석이 다르다는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노라 공언하셨지 않습니까. 이처럼 진실의 순간이 목전에 와 있는데, 어째서 노학자의 그림자나 붙들고 한가하게 쉐도복싱을 즐기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쉐도복싱은 봐줄 만한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글 대여섯줄이면
끝날 얘기를 A4 두 장으로 늘려놓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정서
씨가 제대로 지적하고 수정한 부분이 있으니 이 성과마저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1. “대체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김화영) 바른 어법에 맞게 “거의
없었다”로 교정.
2. “내가 그의 말을 들어주는 탓으로”(김화영) 부정적 의미의 ‘탓’을 ‘때문에’로 교정.
3. “그의 이름은 생테스라고 한다.”(김화영) 누락되었던 '레몽'이라는 이름 복원.
두 번 일독한 결과 이 셋이 전부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말하자면, 나와 뉘앙스가 다르니 형사재판 가자는 식의
생떼입니다. (일부러 말이 안 되게 표현했습니다.)
두 종의 번역문을 비교하면 더 잘 된 것을 고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정서 씨는 20여년 묵은 번역서를
파트너로 세워놓고 자신이 더 잘했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을 독자들 앞에 하나씩 하나씩 열거하는 중입니다. 마케팅의 일환이라 너그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난 수년간 출간된 ‘최신판’ 이방인 번역본들만 대여섯
종이 되던데, 이들은 링에 올려세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번역할 때는 열심히 참고하셨겠지만요. 아무튼 이정서 씨의 다음글을 기대합니다. 최대한 신중히 건더기만 추출해 요약본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