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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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새움출판사 마케터, 독자란에서 자주 보았더니 이젠 정겹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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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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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하게 속화된 버전을 피하고자 한다면 김화영본은 여전히 좋은 선택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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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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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카뮈 독자들을 통째로 조롱하고 모욕했다가 궁색해진 자신의 처지를 카뮈에 빗대는 저 능청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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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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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하면 이긴다’는 게 사훈이라도 되는지 이정서 씨께서 또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문을 올렸군요. 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제기된 중요한 질문들에는 답을 않고 회피하시다가, 급기야 백여 개의 댓글을 삭제하고 접근을 막아놓더니, 무슨 심보인지 다시금 김화영 선생을 끌어다 욕을 보입니다. 그런데 양심과 자존심을 갖춘 카뮈 번역자라면 자신의 해석에 대해 "요상하다" "끔찍하다"고 평한 프랑스 카뮈학회와 담판을 짓는 게 올바른 대응 아닌가요프랑스 쪽의 해석과 자신의 해석이 다르다는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노라 공언하셨지 않습니까. 이처럼 진실의 순간이 목전에 와 있는데, 어째서 노학자의 그림자나 붙들고 한가하게 쉐도복싱을 즐기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쉐도복싱은 봐줄 만한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글 대여섯줄이면 끝날 얘기를 A4 두 장으로 늘려놓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정서 씨가 제대로 지적하고 수정한 부분이 있으니 이 성과마저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1. “대체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김화영) 바른 어법에 맞게 거의 없었다로 교정.

2. 내가 그의 말을 들어주는 탓으로”(김화영) 부정적 의미의 ‘때문에로 교정.

3. “그의 이름은 생테스라고 한다.”(김화영) 누락되었던 '레몽'이라는 이름 복원.

 

두 번 일독한 결과 이 셋이 전부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말하자면, 나와 뉘앙스가 다르니 형사재판 가자는 식의 생떼입니다. (일부러 말이 안 되게 표현했습니다.)


두 종의 번역문을 비교하면 더 잘 된 것을 고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정서 씨는 20여년 묵은 번역서를 파트너로 세워놓고 자신이 더 잘했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을 독자들 앞에 하나씩 하나씩 열거하는 중입니다. 마케팅의 일환이라 너그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난 수년간 출간된 ‘최신판이방인 번역본들만 대여섯 종이 되던데, 이들은 링에 올려세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번역할 때는 열심히 참고하셨겠지만요. 아무튼 이정서 씨의 다음글을 기대합니다. 최대한 신중히 건더기만 추출해 요약본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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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4-05-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렇게 간명하고 핵심적인 글 감사합니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예요. 다음에도 또 올려주세요.

저는 저 "절대번역본"에 대해서 몇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창고관리인에 따옴표 표시를 한 것은 이정서씨의 주장처럼 “소문과 달리, 실제로는 창고 관리인이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했고 “넉넉한 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를 나타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 단어에 따옴표를 쓸때는 말그래도 그 말을 한 사람 (레몽)이 정확히 이 단어를 썼다고 quote를 하는 거고 아이러니나 미화를 나타내는 거니 화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걸 표현하거나 원래의 그 말뜻으로 쓰이지 않았다는걸 표시하는 거죠. “창고 관리인”이라고 했다고 따옴표를 쓰면 레몽은 어쨌든 소위/명목상으로는 “창고 관리인”이라고 했다고 암시하는 것이지 소문과 달리 창고관리인이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창고관리인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으면 이탤릭체를 썼을거라 생각합니다.

가엾지 뭐예요! 나 불행한 일이 아니겠소! 는 솔직히 같은 뜻 같고요. 첫 문단을 비교한 걸 보고 제 인상은 김화영본과 이정서본이 굉장히 많이 겹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등쳐 먹다, 하등의, 떡 벌어진, 반듯한 옷차림 이런거…

아무튼 “한 여자” 부분 (a lady, une dame)에 대해서는 관사의 용법과 한국어 문법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는 어떤 여자를 알았다라는 김화영 번역이 더 맞습니다.

“그러니 보시오. 내가 싸움을 건 게 아니지. 그가 나를 농락한 겁니다”. Manqué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으니, (슬랭이라고 합니다) 영문본을 보면 he was asking for it. 인데 이를 농락이라고 번역한 건 오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어 사전에 따르면 농락은 “새장과 고삐라는 뜻으로, 남을 교묘한 꾀로 휘잡아서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함”인데 맞지 않지요. 차라리 그가 버릇없이 굴었다가 맞고 내용상으로도 아랍인이 레몽을 교묘한 꾀로 휘잡아서, 는 아니지요. 영문본을 기준으로 번역한다면 내가 싸움을 건게 아니라 그가 맞을 짓을 했다 이고 대들었다 버릇없이 굴었다 덤볐다 에서 여기서 기준이 영문본이 아니니 좀 더 나아간다면 나를 물로봤다 무시했다 깔봤다 까지는 몰라도 농락한건 아니지요. 농락은 manipulate 의미가 들어간 단어입니다.

Vous comprenez를 당신은 이해할거요라고 옮긴건 마치 you see를 당신이 보시지요 라고 옮긴거나 마찬가지예요. 영문본에도 you see라고 되어 있네요.

이정서 본에서 이 결투 장면의 번역이 저는 좀 아닌거 같아요. 특히 <‘네가 사나이라면 전차에서 내려.’ 그래서 내가 그랬죠. ‘자, 진정하지.’ 나보고 사나이가 아니랍디다.> 이 부분에서 나보고 사나이가 아니랍니다 이 문장. 여기서 “그랬더니 나보고 사나이가 아니랍디다.” 라든지 그런데라든지 뭔가 들어가야 해요. 아니면 한국어 flow가 자 진정하지 다음에 넌 사나이가 아니야 이렇게 담화가 오간거 같지가 않습니다.마치 자 진정하지 하고 생각해보니 아니 이 자가 나보고 사나이가 아니라네? 뫼르소씨 나보고 사나이가 아니랬어요! 이 뉘앙스가 있음. 또 “이번엔 바닥에 엎어진 채로 발길질” 이 부분도 김화영 본의 “땅에 자빠진 채 발길질” 이게 더 정확합니다. 엎어져서는 발길질을 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충분히 알았느냐 이것도 어색합니다. 한국어 싸움 장면에서 충분히 알았느냐? 이런 문장이 나올수 있을까요? 영어로는 if he’d had enough (영어로 싸우는 장면에는 “충분히” 나올수 있는 대사죠) 라서 충분히라는 단어를 넣은건지… 이거는 맛을 알았느냐 가 나을거 같아요.

atoz 2014-05-09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님/ 안녕하세요. 그 난해한 글을 무척 꼼꼼히 검토하셨군요 ^^

이정서 씨의 글에 대해 하나하나 토를 달자면 끝이 없으니, (제가 아는 한에서) 옳은 지적만 세 개 골랐던 겁니다. 이정서 씨는 결국 한국어 문장을 교정하는 편집자의 역할을 했을 뿐이지요. 반면에 몇몇 확실한 오류도 있는데 그걸 지적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싶어서 모르는 척하는 중입니다. 아무튼, 독자님의 의견에 답변을 드리자면.

1. ‘창고관리인’ 건. 독자님의 견해가 맞습니다. 작가는 ‘magasinier’라는 단어를 강조한 게 아니라, 단지 인용한 표현임을 나타낸 겁니다. 원문 문장은 사실 ‘Il repond’ (그는 대답했다)는 주절을 생략한 형태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어 번역문들은 이 생략을 되살려 번역했지요. 본래의 주절을 생략하면서 카뮈는 그 대신 인용부호로 흔적을 남겨둔 것입니다. ‘창고관리인’이라는 표현의 발화자가 레몽이고, 서술자는 그저 옮겨왔을 뿐임을 가리키는, 혼동을 피하기 위한 표식입니다.

2. ‘가엾다’와 ‘불행한 일이 아니겠소’는 독자님 말씀대로 의미상 차이가 없지요. 번역자는 원문의 표현 “Si c’est pas malheureux!”이 부정형으로 쓰였으니 자기 번역이 더 낫다고 보는 겁니다. 취향의 차이입니다.

3. manquer 동사가 슬랭으로 많이 쓰이는 게 사실이고, 그 경우 정확한 용법을 파악하기는 힘듭니다만, 적어도 지금 장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전적 정의에 일치하는 듯합니다. “Ne pas se conduire à son égard comme il le faudrait." 즉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김화영의 번역이 맞습니다. 독자님 지적처럼 ‘농락’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이상할 뿐더러, 오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 manquer 동사가 빈번히 나오는데 각각 용법이 다릅니다. 그걸 일관되게 옮기지 않았다고 타박하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4. 결투장면. 네 이 대목도 별 문제없는 번역을 두고 트집잡는 정도입니다. 한편 “Je lui ai demande s’il avait son compte" 구절은 김화영(‘맛을 알았느냐’)이나 이정서(‘충분히 알았느냐’)나 둘 다 어색하긴 합니다.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치는 대사라면 짧고 강렬할수록 더 좋겠지요. “됐냐?” 정도로.

불어에 익숙하지 않으신 듯한데도 감식안이 무척 뛰어나십니다.
끈기도 대단하시고요 ^^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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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낳는 오만과 오만이 낳는 무지의 무한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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