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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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이다. 문제는 이 책을 읽었다고 많이들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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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인식론과 역학 - 지물과 지천의 지식철학
황태연 지음 / 청계(휴먼필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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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현대화. 지금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고전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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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병자호란 - 하 - 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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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한국적 비극을 읽는 다는 것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임진왜란은 그나마 영웅이라도 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영웅도 없고, 승리도 없다. 병자호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어떤 반전이 이루어졌다면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을 뿐이다.

 

병자호란은 어떤 소설 보다 거짓말 같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들이 연달아서 벌어져서 눈뜨고 보기가 어렵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데 뭐 좋은 일이라곤 하나 없는 지옥도의 연속이다. 이 땅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은 너무 참혹하다. 이런 식으로 소설을 쏘고 영화를 만들 면 너무 뻔하고, 캐릭터가 볼품 없이 찌질 하다고, 개연성이 없다고, 개막장 드라마라고, 위로와 희망의 해피엔드가 없는 절망극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병자호란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병자호란은 우리가 겪고 있는, 감당해야 하는 오래된 미래의 문제를 보여준다. 병자호란은 우리가 겪는 지정학적 지옥의 매우 동일한 유형을 보여준다. 양란은 우리가 겪게 될 기시감이 가득한 문제를 보여준다. 첫째, 강대국 사이에서 끼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위험에 놓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지 아니면 고래 싸움에 이득을 챙기는 지의 갈림길의 지혜를 보여준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지경에 처하지 않으려면 동아시아 질서의 격변기에 변화의 대국을 볼 눈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위치한 한국은 강대국의 흥망성쇄, 권력 교체기에 특히 지혜로워야 한다. 한반도는 일본은 지리학적 지옥이지만, 한국은 지정학적 지옥이라는 말처럼 외교적 지혜로움이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권력 교체기에 우리의 선택이 무엇이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선택은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한 문제를 던져준다.

둘째, 스스로 제대로 안전과 자존, 평화를 도모할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서 업혀 자신의 권력을 탐하다 자기 발등 찍은 모습을 보여준다. 호가호위하다 호랑이가 내치는 순간 산산이 찢기게 된다. 내적 힘을 키우지 못하고 호랑이 등에 탄 자들의 참혹한 몰락을 보여준다.

셋째, 고통은 백성들이 전담하고, 이득은 지배자들이 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란은 우리 지배자들은 국가적 위기에 자신의 사리사욕만 쫓고, 강대국들에게 백성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대가로 지불하는 지정학적 지옥의 반면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성의 입장에서 지배자가 사리사욕만 챙기는 모습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일이자, 목숨을 걸게 되는 일이다. 지배자의 뻔뻔한 무책임을 우리는 병자호란만이 아니라 여러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겪게 된다. 책임져야 하는 자가 무책임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무책임을 항의하는 자들을 죽이는 뻔뻔함이 우리 역사의 악순환 중 핵심이다.

 

병자호란은 길을 잃고 길을 찾아야 하는 자의 반면교사로서 훌륭한 사례다. 임진왜란의 재조지은에서 이어진 비극이 어떻게 백성과 나라를 죽음의 나락으로 몰고 갔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병자호란은 국가 권력은 위기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백성의 나라에서 권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를 배우는 효과적인 거울이 될 수 있다. 외부의 적 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라는 것. 백성의 나라인 조선을 내부에서 갉아먹은 좀벌레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우리를 책임질 권력자들의 안목과 선택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좌지우지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무슨 모욕이고 치욕이란 말인가?

 

임란과 호란 당시 임금도 신하도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를 역사 시간에 임금이 무릎을 꿇은 치욕과 죽어간 백성들이 별 다른 차이 없는 것이라는 물타기를 당해 왔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세 번의 큰 절하고 아혼 번 머리 조아린 것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권력을 가진 왕과 신하들이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강조하면서 이들의 반성과 사과, 책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인조와 사대부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화를 키웠다. 이 화의 고통은 고스란히 모두 백성들이 감당해야 했다. 인조와 조선 지배층들은 양란의 비극에 대해 책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을 묻는 자들을 명분과 예로 압살했다.”

 

우리는 인조와 서인 아니 조선 지배층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루지 조선 백성과 세계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 명을 향한 의리와 명분이 사실은 어떤 의미인지, 북벌론의 실제적 대응인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허울에 불과한 것인지, 이후의 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한 사대부들의 예치 강조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양란 이후 영정조의 르네상스, 이후의 삼정문란, 개항이라는 시기가 장기지속하는 조선의 무책임의 역사라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 시간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무책임, 무대응의 역사에 직시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했다. 양란 이후 조선 후기의 역동성과 지배층의 무책임이 어떤 모순을 낳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도록 방치되어 왔다. 그 출발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고난을 치욕으로 다루는 데서 시작된다.

 

인조가 겪은 게 그리 대단한 치욕인가?

 

임금(인조)은 오랑캐(청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이나 무릎을 꿇었다이 장면을 우리 역사에서는 삼전도의 장면은 뼈아픈 치욕으로 그리곤 한다.

하지만 조선 조정과 신하들에게 치욕이 그리 심각한지 몰라도, 병자호란은 백성들에게는 죽음의 시간이었다. 청군에게 당한 백성들이 겪은 참혹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백성들은 청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가고 또 바다에 뛰어들지만 피할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자결하려고 칼로 목을 찌르고, 바위에서 뛰어내렸으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정양, <강화도 함락 참화 수기>)

 

조선 왕과 사대부들에겐 머리를 숙이고 절한 것이 치욕이 뼈에 사무친다고 했지만, 백성들에게 병자호란은 참혹한 죽음의 시간이었다. 이런 비극을 만든 당사자인 인조는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양란을 통해 조선은 안팎으로 무너져 내리게 되었는데, 특히 병자호란은 변변한 전투 한번 치러보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병자호란은 500년 조선의 난맥상을 47일간의 전쟁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사대부들의 어전회의는 성 안팎에서 백성들이 죽어 가는 와중에 열린다. 식량 문제가 사활이었다. 성 안에 갇혀 있는데 13천명의 군사가 겉보리 한 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왕의 답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알아서 잘 하라

건초가 없어 말이 굶고 있다고 하니, 병사들에게 방한용으로 나눠준 가마니를 거두어 말을 먹이도록 한다. 그것도 없어져 말이 죽으니, 말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인다. 차라리 일찍 말을 포기했다면 병사의 겨울옷 가마니도 남고 먹을 식량인 말고기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일한 전면전이었던 북문전투는 영의정의 엉터리 지휘로 300명이 죽었다. 물론 패전의 책임은 애먼 무관에게 돌아간다. 그래 놓고 청군에게 봉쇄된 산성에서 새해라고 명나라 황제를 향해 제를 올렸다.

그들은 화친이냐 전쟁이냐 시비하며 시간만 끌다가, 피는 피대로 보고 굴욕은 굴욕대로 당했다. 왕의 굴욕이야 별거 아니지만 전란 후 50만 명이 인질로 끌려가는 참극을 겪었다. 과연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어나갈 책임을 가진 인조와 신하들이 치욕을 겪었다고 이해해줄 만한 행동을 한 것이 있을까

 

 

수 차례 인조는 사과문을 냈지만 말 뿐이었다. 실제로 인조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 이로 인한 고통도 오롯이 백성들이 감당해야 했다.

 

인조의 걱정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였다.

 

 

인조는 자신의 왕위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인조의 슬픔의 범위는 신하들이었지, 자신의 백성들이 아니었다.

 

무엇이 명분과 의리란 말인가?

 

조선 후기 지배층들은 의리와 예의를 중시한다고들 한다. 조선의 지배층인 임금과 사대부들은 명분과 예, 의리를 중시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명분과 예를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 명분과 의리, 예를 중요시 했는지는 살펴볼 문제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들은 의롭고 강직한 것인가? 자결하고 청에 의해 죽으면 의롭고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신립처럼 탄금대에서 패전하고 자결하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가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권력자가 죽음을 맞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어야 하는 가?

 

조선의 권력 구조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출발했다. 어느 나라보다 절대권력의 출현을 방지하는 민주적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인조 당시에도 왕은 절대권력자가 아니었다.

인조의 왕비 인열왕후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대구에서 황새때들이 싸우고, 바위가 저절로 육지로 옮겨다니는 사례 등을 들어 신하들이 왕을 질책했다

 

대사헌 윤황 : 나라가 망하라면 변고가 생기기 마련인데, 지금의 나라 상황은 망하기 직전이옵니다. 전하께서 먼저 자세를 낮추고 반성하셔야 하옵니다.

인조 : (끄응.)

 

이제 사대부 권력은 왕권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서 위에 있었다. 이후 노론 세력이 왕을 간택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은 조선의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넘어서 사대부에게 넘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의 권력자들인 선비들은 명을 위해 옥쇄까지도 불사하자.”고 소리 높였다. 그들은 명에 대한 사대와 의리로 똘똘 뭉쳐 있었다.

호란 전 사대부들은 홍타이지와 사신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문관의 신하들, 성균관 유생들은 요구는 현실을 전혀 보지 않았다. “부모의 나라 명을 배신할 수 없다.”며 뜬금없는 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그건 현실 속의 명분, 백성과 나라를 위한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을 향한 명분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청나라 사신을 난동 속에서 쫓아내고 나서야 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다. 침략 전쟁은 코 앞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벌어지고도 전쟁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전쟁을 불사하고, 전쟁을 야기하는 행동을 하고선 전쟁을 대비하지 않은 무책임한 권력자들의 행태가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다.

 

정묘호란 때는 부득이 후금과 화친했다. 하지만 오랑캐의 욕구는 날로 커져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협박을 해오고 있다. 이에 강약과 존망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니 모든 백성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분수를 모르는 오랑캐와 단교할 것이다. 혹시 오랑캐가 침략해 올 지 모르니 방어 태세를 확고히 하라.”(인조의 유시문)

 

그때 중앙군은 1만명에 불과했다. 지방의 10만 속오군은 군역 말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훈련의 기회나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전쟁 대비를 하지 않았다.인조 정권은 도성과 수원, 강화도, 개성, 남한산성 이외에는 지킬 마음이 없었다. 전쟁이 나면 자신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전쟁 대비는 나만 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무책임에 대하여 부제학 정온은 인조 정권에 대해 전쟁 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정혼의 상소 : 원수를 선발해 보내고 압록강을 방어할 대책을 강구하시옵소서. 전하께서 개성까지 나아가 신료들을 독려하고 군율을 밝혀야 하옵니다. 또 공신들의 농장 관리에 여념 없는 정예병들을 전방에 배속하고 호위청 군관 5-6백 명을 뽑아 변방으로 보내 침략에 대비하여야 하옵이다.

인조 : 내 호위는 어쩔 것인가? 그대는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 같소.

사헌부와 사건원 : 정예병이 모두 반정공신들의 휘하에 부려지고 있으니 이를 근절해야 합니다. 변방의 방어가 충실하면 서울이 편안해지고, 서울이 편안하면 호위 무사가 필요 없사옵니다. 또한 청의 도발에 대비하여 군량을 갖춰야 합니다.

인조 : 사간원 대간들은 연소하여 세상 물 정도 모르면서. 어찌 군사와 군량 문제를 함부로 언급할 수 있는가!

 

조선 지배층들은 위기를 야기해놓고,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최명길 : 하루아침에 적의 기마병이 휘몰아오면 체찰사는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고, 청천강 이북의 모든 고을은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안주성도 온전할 수 없으니 백성들은 어육이 되고, 종사는 파천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먼저 도체찰사와 도원수를 평안도로 보내 지휘부를 설치하고 평안병사를 의주로 들여보내 그곳의 장졸들에게 오로지 진격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하옵니다.

 

최명길도 전쟁을 해야 한다면 공세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터가 조선이 되면 더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조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전쟁 계획을 올린 대사간 윤황의 계책을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다. 최명길, 정혼, 윤황의 목소리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인조반정의 주역들은 강화도로 도망가면 얼마든지 오랑캐의 침략에서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인조는 전쟁을 하겠다고 하다가 정작 전쟁이 눈앞에 닥치자 척화(명을 위한 자존심을 위해 오랑캐와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와 주화(어떻게든 전쟁을 피해야 한다)에서 오락가락 했다.

 

심지어 조선과 청의 싸움을 부추기고 바라던 명의 사신 황손무가 조선을 걱정해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얼마나 볼상사나워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명 사신 황손무 : 조선의 신료들은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소. 귀국의 인심과 군비를 볼 때, 저 강한 오랑캐 도적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외다. 그들과 화친을 끊지 마시오!

 

물론 조선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이런 글을 보낸 것이 아니다. 조선은 명이 가능한 잘 싸워서 청에게 타격을 입히기를 바랬다. 동시에 조선이 망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야 청을 후방에서 견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선이 이런 균형을 잃고 타격도 주지 못하고 망할 상황에 처했다고 본 것이다. 조선이 청에 망하면 명도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충고와 비판의 글을 보낸 것이다.

지배층 즉 나라와 백성을 책임진 권력은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살던 이들이 38년 만에 탈출해 와도 다시 쫓겨내거나, 국경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백성이 아니라 명이라는 허울을 내걸고 자신의 기득권만을 지키고자 했다. 국가 권력은 백성들을 책임지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몰두했다.

 

왕과 신하들이 벌인 비극은 전국 방방 곳곳에서 벌어졌다. 강화도도 마찬가지였다.

지휘부는 우왕좌왕했다. 상황 판단 능력을 상실했고,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더구나 자신의 안위만 지키려고 했고, 무책임하게 도망가지 바빴다. 백성들은 죽어 나갔다.

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체찰사(전시 총사령관)인 김류의 아들 김경징을 강화 검찰사(강화 경비사령관)로 임명했다. 당시 한성판윤이었던 김경징에게 최후의 보루인 강화도를 지키라는 중책을 맡겼다.

김경징은 호언장담하며 아무런 대비도 안 했다. 강화도는 날개가 있지 않은 한 못 온다며 영의정의 아들은 아무런 대비도 안 하고 놀기 바빴다.

세자빈과 봉림대군은 한양을 떠난 지 사흘에서야 강화도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를 건널 수 없었다. 검찰관인 김경징이 가솔(家率)들과 50여 바리나 되는 짐을 먼저 들여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세자빈조차 추위에 떨며 이틀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세자빈이 김경징의 재산과 가족 뒤에 대우받았으니 백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정작 적이 쳐들어오면 먼저 도망가고, 이후에는 남 탓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을 때 김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감싸기까지 했다.

지금도 강화도에서는 갯벌에 있는 빨간 나문재를 '경징이풀'이라 부른다. 김경징의 오만과 무책임에 죽어간 백성들이 '경징아, 경징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 원통한 비명 소리에 지배세력은 적반하장으로 대응했다

 

다른 자료에 비하면 이 자료의 탁월함은 무엇일까?

 

임진왜란을 배울 교재들은 많다. 그에 비하면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공부할만한 교재들이 부족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에 기초해서 좀 더 현재적 시야를 가지기 어려웠다. 흥미진진하게 병자호란을 배울 때는 <최종병기 활>을 보며 아쉬움을 달해야 했다. 병자호란의 참상을 배우는 데 있어서서 <남한산성>에 비한다면 이 자료는 매우 소중하다. 소설과 영화 <남한산성>이 과도하게 권력자의 시선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 <남한산성>은 김상헌과 인조, 최명길을 너무 멋지게 그린다.

 

김상헌 : “전쟁이 끝난 뒤, 왕께서 상을 내릴 것

대장장이 날쇠 : “왕을 위해 가는 게 아니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간다” “사대부들이 명을 섬기든 청을 섬기든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건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굶주리지 않는 삶

대장장이 날쇠의 입장도 같이 제시하지만 결국 <남한산성>은 권력자의 시선과 입장을 드러낸다. 만화 병자호란은 권력자를 둘러싼 환경과 입장을 다각도로 살펴준다. 한명기는 <남한산성>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전쟁의 참화에 쓰러진 민초, 이 속에서도 이득을 챙긴 백성, 자신의 권력에 눈이 먼 인조, 입만 산 신하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군에 포로로 잡혀가 3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다시 청국으로 퇴출당한 안단, 노비 출신으로 곤궁한 삶을 살다가 청 황제의 눈에 들어 상국의 통역사가 된 정명수, 사선을 넘고 넘어 고향에 돌아왔건만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수많은 환향녀(還鄕女) 등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살뜰하게 들려준다.

소수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만화 병자호란은 다양한 사람들이 겪은 참화를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남한산성>이 들려주고자 했지만 결국 지워버린 민초의 목소리를 한명기의 만화는 올곧게 살려준다. 왕에게 길을 안내했던 뱃사공이 청군에게도 길을 인도하겠다 했다.

 

김상헌 : “당신은 조선 백성이 아니냐?”

뱃사공 : “왕에게 좁쌀 한줌 받지 못했으니, 청군에게 곡식을 좀 얻고 싶다

 

병자호란 만화의 아쉬움

 

물론 이 만화는 두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든다.

첫째, 한명기 글의 진수를 뽑아내는 가하는 점이다. 한명기의 통쾌한 반전의 프레임과 알찬 정보들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꽤 있다. 핵심을 뽑아 만화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둘째, 이미지가 스스로 독립적으로 말하는 가 하는 점이다. 그림 이미지와 문자를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넘어서 그림 자체가 독립적으로 힘을 발휘해야 한다.

<만화 병자호란 상>명은 지고 흐름이 떠오르다이다. <만화 병자호란 하>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이다. 상의 그림은 청 병사다. 하는 인조다. 청 병사가 학살한 것은 백성의 나라 조선이다. 상 하라면 이런 대칭에 주의하면서 그림을 뽑았어야 했다.

 

그림들이 너무 초등스러운 점은 아쉽다. 인조를 멋진 용모, 청 인물은 험상궂고 못난이들로 채운 점은 너무 진부하다.

얼굴 표정을 눈물이나 땀등으로 상투적으로 표현한 점은 너무 답답함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대사간 윤황의 전쟁 대비에 대한 인조의 반응이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 감동의 눈물인지, 척화를 대비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에 찔리고 말문이 막힌 것인지 독자로서는 잘 알기가 어렵다.

정재홍의 작화는 이미지가 제대로 스스로 말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지의 표정과 행동 표현이 너무 단순하고, 상황과 맥락 그리고 사건과 주인공의 입장을 여유 있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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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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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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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 질문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는 ‘프랑스 아이’의 성장비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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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다 편차가 큰 작가지만. 이번에는 그만의 매력이 살아 있다. 점수가 아닌 아이 성장의 교육으로 전환하려는 한국 교육에서 배워야 하는 지점들이 넘친다. 고맙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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