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 레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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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여자가 죽었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였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아버지의 외동딸이었고, 작은 마을의 다정한 이웃이었다. 신문과 담배와 로또를 파는 담뱃가게를 운영했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살해되었고, 범인은 남편이다.

한 여성이 살해되었고, 이 여성은 모든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에서는 두 아이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어머니’라는 정체성에 주목한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구타,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등을 당하다가 결국 살해되었다.
어머니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혼과 가정, 가족, 집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통에는 원형이라도 있는 듯,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통받는 모습은 조금씩 비슷하다. 떠날 수 있었지만, 떠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그저 ‘지나칠’ 수 있었을까?” (p.119)

프랑스 사회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가정폭력의 목격자들은 자신이 착각했거나, 관계가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고, 공권력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구조 요청을 무시했다. 과연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유일한 범인은 아버지이다. 백번 양보해서 살인이 홧김에 저지른 행동이라고 해도 책임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자신에게 아내의 생사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어떻게든 죽였을 것이고, 결국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p.128)

사실 열아홉 살, 열세 살의 아이들이 깨달을 만한 것이 아니다. 소중한 순간들을 전혀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할 때이다. 아직은 일상보다 더 특별한 것들을 꿈꾸어도 좋을 때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게다가 우리에게 가해진 충격을 치유하는데 필요한 힘을 우리 안에서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p.156)

과연 아이들은 파괴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가정폭력이 남긴 상처를 (고통스럽지만) 한 번쯤 직시해보길 바란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한 편의 르포를 보는 것 같아 힘들지만, 읽기 시작하면 자의로 멈출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타인의 불행으로 내 삶에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나 많은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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