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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The Unlikely Pilgrimage of Harold Fry
Pilgrim. 좋아하는 악세서리 디자인 브랜드 네이밍이다.
ㅉ. 좋아한다면서 왜 그 뜻을 찾아볼 생각도 안했을까-
이 책을 읽고, 그것도 옮긴이의 글을 읽고나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순례' 라는 뜻의 pilgrimage가 중세 라틴어 peregrinus와 관련이 있으며 '들판을 건너' 라는 의미라는 것,
이것이 외국이나 낯선 땅으로 간다는 의미로 확대되었으며 더 나아가 종교적 성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행동과 연결되어
지금은 Pilgrim이 성지순례라는 뜻과 더 강하게 연결된 단어로 사용된다는 점.
그리하여 책을 읽는 내내 전혀 강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종교적 의미의 Pilgrim'은 책 속의 주인공이 종교적이지 않음에 반해 저자의 종교적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짚는 옮긴이의 말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7세기의 '천로역정' 과 19세기의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까지 예를 들어 저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단계까지 가자 그 놀라움이 더욱 배가되었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무지한 나에도 괜한 부끄러움이 스며들었다.
한 평생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며 사랑하는 모린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보통의 가정들처럼 지지고 볶으며 키우다 은퇴를 하면서 집 지키는 멍한 노년의 가장이 되어버린 해럴드 프라이. 그에게 오래 전 함께 일했던 퀴니 헤네시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순례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국 최남단에서 시작되는 그의 걷기는 암투병 중인 퀴니를 살리기 위한 믿음의 순례가 되고 대다수가 불가능하다고 고개젓는 가운데 - 해럴드 스스로도 불가능일것이라 알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 독자들은 그저 조금씩 앞으로 내딛는 걸음과 함께하게 된다. 그것은 해럴드의 순례가 '무모한 목표를 향한 헛짓' 이 아니라 매 순간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는 귀한 행위'라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스컴에 오르고 나서 그의 곁을 잠시 함께했던 짧은 만남의 사람들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그들도 무언가 삶의 해결책을 찾아 나선 가엾은 이들일 뿐. 하지만 책을 처음 열어 해럴드와 함께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 곁에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의 걷기가 그 자신에게, 그리고 모린에게, 렉스에게, 그리고 데이비드에 대한 마음들에 치유의 과정이 되었음을 깨달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게 한 퀴니 헤네시에게, 젊은 날의 용기에 무한한 감사를 보낼밖에!
사실 저자가 얼마나 깊은 의도로 이 책을 썼던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그녀가 아버지를 그리며 썼다는 이 소설이 그녀의 첫 소설이라는 점에 감탄하면서 인간의 감정을 이리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경탄해마지 않는다. [완벽] 이라는 신간이 나왔다는데 꼭 읽어보고 싶다. 지켜보고 싶은 작가.
인간의 감정 뿐 아니라 그녀가 그리는 시간의 풍경화에 취해 한동안 눈동자를 떼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해럴드는 새벽 전 이른 시간에 잠을 깼다. ... 밤과 싸우는 빛이 지평선에서 스며 나오고 있었다. 너무 창백하여 아무런 색깔도 없었다. 거리가 살아나고 빛이 자신감을 가지면서 새들이 한꺼번에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잿빛, 크림빛, 복숭앗빛, 쪽빛을 거쳐 파란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개의 부드러운 혀가 골짜기 바닥을 핥으며 기어가고 있어, 산꼭대기와 집들이 구름에서 솟아 나온 것처럼 보였다. 달은 이미 흐릿하고 희미했다. ...
해럴드가 처음으로 밖에서 밤을 보낸 후 문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바깥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레이철 조이스의 놀라운 표현력, 그리고 이렇게 전달해준 유려한 문장력의 소유자 정영목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