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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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TV와 위스키에만 온 정신을 쏟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는 어머니. 친칠라에서 고양이로, 고양이에서 강아지로, 강아지에서 염소로, 자신의 분노를 쏟을 대상을 찾는 동생. 피 냄새로 가득한, 숨 막히는 저녁 식사 시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는 그런 곳에서, 하지만 이 아이는 길을 찾아낸다. 자기 생의 방향을 바꾸어 줄 길을, 내일이 오고, 이어서 또 그 다음 날이 오고, 그렇게 진짜 삶으로 이르는 길을 스스로 찾아낸다. 그 눈부신 여정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283p_옮긴이의 말 중.

 

 

 

책 잘 만드는 아르테.

이번 책은 아르테책수집가5기 활동으로 두 번째 받은 도서이다. 아르테의 책 답게 너무나 예쁜 표지에 딱 어울리는 살구색 띠지. 모모, 자기 앞의 생을 잇는 경이로운 성장소설 이라고 책에 대한 설명이 써있다. 몰입감이 뛰어나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 성장소설.” 하며(다 예상되는 뻔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가슴이 너무 아려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중간중간 책을 덮어놓기도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그대로 나에게도 경이롭게 다가온 가슴 먹먹한 소설 <여름의 / 겨울> 책을 소개한다.

 

 

 

프랑스 소설.

<여름의 / 겨울> 이 책의 원제는 진짜 삶(La vraie vie)”이다.

어느 한여름날, 주인공은 끔찍한 일을 목격하고 그보다 더 어린 남동생은 그 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7월이었지만 내게는 겨울보다 더욱 검고 더욱 차가운 밤이었다.”-46p)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여름처럼 파릇파릇 싱그럽게 자라나야 할 어린 시절 이들에게는 어둡고 차가운 겨울의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진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원제목 진짜 삶(La vraie vie)”도 이 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요즘 말로 ~~라이프정도랄까? (= 진짜 × 진짜 라는 뜻)

진짜거짓의 반대말이다. 책 속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읽는 내가 거짓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피하고 싶을 정도로 거북스러운 장면들도 이 아이의 진짜 삶이다. 주인공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누구든 그 상황이라면 주저앉을 수 있겠지만 (‘욕망을 잃은 텅 빈 봉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어머니처럼...)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미래를 만들어간다.

 

 

 

이름 없는 주인공

주인공이지만 소설 속에서 이 아이의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쏟고 사랑을 준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소설 속 여러 인물들 속에서 주인공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 사랑받지 못하고 각자의 상처 속에서 건조하게 숨죽이며 살아간다. 단 한명 이름이 불려지는 사람은 주인공의 남동생 이다. (, 조연으로 나오는 교수님과 그의 아내 야엘도 이름이 나온다. 이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사랑으로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남동생 을 사랑하는 마음, 그의 순수한 영혼을 지켜내고 싶어하는 주인공인 누나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진다.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어린 남동생의 영혼을 마치 엄마처럼, 어른처럼 돌본다. ‘의 미소를 지켜내기 위한 이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읽는 독자인 나도 깨닫는다. 진짜 삶에 대하여.

 

 

 

진짜 삶(La vraie vie)”

진짜 삶이란 상처를 피하거나 묻어두는 것이 아님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 속 이름 없는 이 주인공 아이가 성장하면서 제 2의 삶이 시작될 때 비로소 그녀만의 이름을 갖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 있는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걸고 진짜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책 <여름의 / 겨울> 의 주인공 소녀의 모습을 통해 어른인 내가 배우게 된다. 어른으로서 내 자신은 물론이고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들에게 전해줄 사랑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내 삶의 전부를 껴안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임을.

 

   

 

 

 

 

 

 

 

 

15p 질은 항상 작은 젖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마치 작은 발전소처럼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질의 웃음은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52p 그 분위기, 질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 분위기는, 그 애가 아니었다. 피와 죽음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TV에 온 정신을 쏟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68p 아버지가 나를 우리 꼬맹이라고 불렀다. 이 짧은 두 단어는 반딧불처럼 내 귓속으로 들어와 가슴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며칠 동안이나 반짝거렸다.

 

 

91p~92p 나는 시작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했다. 계획에 따라 굴러갈 사건들을 상상하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삶의 여정을 능숙하게 지배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믹서에 담겨 출렁이는 수프와 같아서, 그 한가운데에서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칼날에 찢기지 않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117p 나는 자연과 그것의 온전한 무심함을 사랑했다. 우리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연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생존과 번식에 관한 세밀한 계획을 수행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망가뜨려도, 새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위안을 느꼈다.

 

 

133p 사실 학교에 있는 모두가 무기력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선생님들은 그저 평범하게 나이가 들었을 뿐이었고, 학생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었다. 여드름이 좀 나다가 성관계를 몇 번 하고,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낳고 일을 하다가 얍! 그들은 늙을 것이고 아무 쓸모도 없어질 것이다.

 

 

233p 어머니의 삶은 실패했다.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웃음 없는 삶, 선택 없는 삶, 그리고 사랑 없는 삶이 망가진 삶이라는 것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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