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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경제가 힘들다보니 서민들의 생활은 말이 아닙니다. 온갖 절약의 수단을 다 동원해도 통장의 잔고는 빈약하기만 합니다. '동행'이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곳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은 이 곳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인가를 의심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동남아 후진국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부익부 빈익빈 폐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같은 하늘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인 그들을 외면하기가 마음 한구석이 아파옵니다.
전태일열사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그렇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하지요. 굳이 노동운동을 하지 않아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노동자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한 한 청년의 숭고한 죽음앞에 살아있는 우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전태일 열사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분신 항거한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의 노동현실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합니다. 평균노동시간만 일하는 직장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대기업에서나마 형식적으로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 중소기업에서도, 하청받고 있는 용역회사에서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경제가 어려울 수록 서민들의 생활은 더 힘든데, 노동현실은 더 열악해져가기만 한데, 이럴수록 최소한의 근로조건 보장과 요구가 필요하지만 역설적으로 회사에서 쫒겨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 학생, 재야인사들의 죽음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소선 여사가 분신한 박영진, 최루탄을 맞아 희생당한 대우조선 이석규의 주검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읽는내내 눈물이 납니다.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세상을 살아보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정치적인 것도 거창한 요구조건도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 최소한 근로조건을 요구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폭압적으로 진압했는지..군사정권은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요. 덤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새롭게 읽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 새해가 들어서 경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투쟁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용자나 노동자가 한발씩 양보하며 이번 국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 최하의 노동자들은 양보할 것도 더이상 없습니다. 오히려 이럴수록 그들의 생활을 안정화시키고 보장해야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용자와 노동귀족들이 그들을 배려하고 두발 양보해야 다같이 살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됩니다.
예전에 하종강선생의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악하게 살아가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든의 나이에 성하지 않는 몸을 이끌고 진정한 노동자의 삶이 보장되도록 헌신하는 이소선 여사님을 보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소선 여사는 그래도 자신을 계속 낮춥니다. 고맙다는 말만 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 분들께 고맙다고 해야합니다. 연말과 새해걸쳐 너무 좋은 책을 읽게 되어 올 한해도 따뜻한 한 해를 보낼 것 같습니다. 조금 없어도 힘들어도 서로를 배려하고 안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