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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
샤론 베글리 지음, 김종옥.이성동 옮김 / 북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통해 티벳 불교의 고승인 달라이 라마가 뇌과학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불교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서로의 영역에 자양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티벳 불교는 명상과 수행을 통한 불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자칫 불교가 사회와 동떨어져 소극적 측면만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불교에 담긴 <적극적 실천의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만이 마음이 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논리가 수긍될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예전에 마음이라는 것은 심장에 있다거나 뇌의 어느 부분에 있다는 가설만 있었을 뿐, 확인되는 바는 없었다. 그래서 고대부터 끝임없이 '마음'이라는 것에 집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우주를 포괄할 정도로 넓기도 하다가, 어떤때는 바늘구멍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옹졸해지기도 하다. 즉, 마음은 커지는 데에도 한계가 없고, 작아지는 데에도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인들과 범부와 차이를 마음씀씀이를 얼마만큼 자유롭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마음이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사물의 실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마음씀씀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물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언어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을 금한다. 왜냐하면 사물은 지적 규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는 순간 사물의 본질과 달라지게 되고 왜곡되어 오히려 마음의 전능함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한다.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느끼는 장애는 느끼고 있으므로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장애상태가 계속되지는 않으므로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물의 실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것은 행동과 실천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물은 무엇인가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된다. 이렇게 실천과 절실한 노력으로 이룬 성과는 하나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자리잡힌 아집, 법집을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한다. 마음의 전능함을 펼칠 수 있도록 <버리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수행으로 忍, 施, 練을 하게 되는데, 참고 규칙적인 엄격한 생활을 하며 베푸는 그 것이다.
명상과 수행을 통해 마음이 본래의 모습을 찾으면 이 책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 <뇌의 가소성> 문제도 불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은 뇌의 손상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실한 노력과 실천으로 뇌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뇌과학에서 손상된 부분은 회복불가능하고 다른 부위에서 그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음을 최근의 연구성과에서도 알 수 있다.
뇌부위마다 각각 일정한 능력을 담당하고 있지만, 수행을 통한 대뇌의 감각피질을 확장할 수 있고, 시각피질이 손상되었어도 청각피질의 일부를 시각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나 측두엽의 언어영역을 활성화하여 어린이 난독증을 고쳤다거나, 명상과 수행을 통해 강박증 우울증등 정신장애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은 뇌의 무한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뇌의 가소성이 언제 어떻게 해야만 가능하는가라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마음이 어떤 특정한 상태 <주의집중>상태에 있을 때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無我, 판단을 보류한 전능한 마음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달라이라마의 평전]는 달라이라마의 일대기를 [티벳트 말하지 못한 진실]는 티베트의 인권탄압에 대한 보고서를 다루었는데, 이어 읽게 된 책도 유익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뇌과학의 신비는 올리버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 이케가야 유지의 [뇌과학]도 참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