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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ㅣ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내가 중학생 때는 두 가지 소설이 유행했다. 바로 인소와 팬픽. 20대라면 학창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일 것이다. 그런데 난 인소는 몰라도 팬픽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고 종이책이 더 좋아서 그랬던 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하고 얘기하다가 팬픽을 안 읽어봤다고 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약간 후회가 되긴 한다. 그때는 정말 전설이라고 부를 만한 아이돌들이 많이 활동하던 터라 명작들이 되게 많았다. 오죽하면 해당 아이돌에 관심이 없더라도 팬픽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을 정도.
그때는 왜 그렇게 팬픽이 인기가 많은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그 이유를 좀 알 것도 같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나의 스타를, 내가 만들어낸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일일 것이다. 딱히 어떤 사랑이라고 선을 긋지는 않더라도 애절하고 애달파서 아름다운 이야기에 내 스타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마음은 물론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이 마음이 잘 담긴 소설이다. 모든 팬들을 위한 헌정 소설이랄까. 아이돌 재로캐럿과 그들의 팬인 파인캐럿이 쓴 팬픽이 이 소설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빛나는 스타이지만 결국 계약서에 적힌 숫자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연예계의 뒷면과 그들을 바라보는 팬의 마음. 그 마음은 때때로 삐뚤어져 최애가 아닌 다른 멤버를 증오하기도 하고 최애 멤버가 탈퇴했지만 여전히 그룹을 응원하기도 한다.
여러 형태인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이 책의 색도 무지개이다. 색깔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과장되지 않고 압축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짧은 단편 안에 이렇게 짙은 감정이 담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왠지 어디선가 진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정말로 어디선가 또다른 준희가 다인을 향해 달려갈 것만 같다.
요즘 날씨가 많이 흐리다. 내 감정도 많이 흐렸다. 곧 비가 올 것처럼 짙어졌다가 슬픔을 쏟아내기도 했고 잠시 맑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무지개는 뜨지 않았다. 힘든 일상 속에서 무지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볼 여유가 없었다. 이 책은 그런 허전한 내 마음속의 무지개가 되어주었다. 쓸쓸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따뜻했던 책이었다. 설령 재로캐럿은 끝났을지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될 거라고 말하는 이 책이 좋았다. 추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존재할 거라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좋았다.
<라스트 러브>는 이 책의 제목이자 제로캐럿의 데뷔곡이다. 그리고 제로캐러의 첫 콘서트이자 마지막 콘서트이다. 처음이지만 마지막이라 더 강렬한 '라스트 러브'는 각각 다른 곡의 형태로 우리의 마음이 남아 있다. 그리고 라스트 러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곁에 있다.
과거형이고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라 애틋한 사랑, 라스트 러브. 좋은 소설을 만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