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노트
이서윤.홍주연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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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교회를 다닌지 26년 째. 감사의 가치는 오랜 시간 동안 배워왔지만 사실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 불만할 때가 더 많다. 이를 바꿔서 말하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살 때가 많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읽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배운 것들은 다 잊어버린 걸까. 현실에 치여 살다 보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게 더 눈에 잘 보였다.

그러다 <더 해빙>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부제를 봤을 때는 다소 딱딱한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잡고 펼쳤는데 생각보다 편안한 이야기여서 놀랬다. 어쩌면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건 무척 거창한 존재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그 힘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으며 내가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힘이었다.

그 힘은 바로 내가 가진 것을 인식하는 힘이었다. 설령 10만 원만 가졌더라도 그 10만 원이 가지는 힘을 인식하는 것. 또, 그 10만 원을 내가 투자하고 싶은 곳에 썼을 때 교환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

그래서 이 힘은 '낭비'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산 것들이 아니었네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낭비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사는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그런 것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낭비와 가식, 75쪽

낭비가 의식하여 하는 행위라면, 해빙은 인식하여 하는 '행동'이다.

구루의 노트에는 이런 내용이 또 적혀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낭비나 과시적 소비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죠. 파도를 타듯 자연스럽게 부의 흐름을 타게 되는 거예요. 노를 저을 것도 없이 그저 보트를 탄 채 그 물결 위해 떠 있기만 하면 돼요."

"삶이란 내 안의 여러 가지 '나'를 찾아 통합시켜가는 여정이죠.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해요. 사람은 자신다워질 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되죠."




즉, 해빙은 곧 인식과 인지이다. 그 힘에서 부와 행운이 탄생한다.

이 책을 읽고 해빙 노트를 직접 작성해보았다. 색연필과 색연필을 끼울 수 있는 가죽 천을 책에 다 붙이면 위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 나온다. 이 노트를 직접 쓰며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새삼 돌이켜 보게 되었다. 힘든 날에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이 감사함에서 힘을 얻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이런 것을 가졌구나, 나 이런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게 더 또렷해졌다.

미래가 아닌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게 진정한 해빙의 출발인 거 같다.

*책을 제공해주신 수오서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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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 2020년 전면 개정판
정목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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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덕후인 내가 위로를 건네는 책을 원할 때는 그만큼 피곤하고 지쳤다는 걸 의미한다.

비록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가끔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위로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시기가 딱 그런 시기였다.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은 됐지만 피곤에 찌든 하루가 지속되는 하루(ㅠㅠ)

언제 한 번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난 기반은 탄탄한데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나면서도(신입한테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나 자신에 대해 답답하기도 했다. 나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발전하고 싶은데 말이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의 의미를 곰곰히 따져보면 나아가는 속도가 느리다고 하더라도 결코 늦게 도착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우리가 느리게 나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이 책에 담아 놓았다.

상처는 받으면 모래에 기록하고,

은혜는 받으면 대리석에 새기라는

밴저민 프랭클린의 말은 경전의 말씀과 닮았습니다.

우린 반대로 살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루 세 번 밥을 먹듯 고마움이라는 약 챙겨 드세요.

-80쪽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어느 종교에서도 인정하는 가치라는 걸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하루 동안 몇 번이나 불평할 때가 많은데 작은 거에 감사할수록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하루 세 번 밥 먹듯 고마움이라는 약을 챙겨 먹으려고 한다.

다만 우리 회사 대표가 봐주었으면 하는 문구가 있었다. 덧붙여 나도 명심해야 할 문구이다.

지위가 올라가면

사람들에게 지위만큼 대접받고 싶어 하죠.

그런데 지위가 올라간다고

인격이 함께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위보다는 인격이 좀 더 나아야

사람들이 따를 것입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포용력의 크기는

더 넓어져야 합니다.

-81쪽

정말...대한민국의 모든 상사에게 바치고 싶은 구절이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건 지위가 아니라 겸손한 성품이라고.

다만 지위만 믿고 권위적인 말에 상처받고 온 날이면 이 구절이 떠올랐다.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고마운 사람 이름을

노트에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의 고마운 점

한 가지씩을 이름 옆에 써보세요.

화가 풀리고 편안해질 거예요.

부정적 감정이라는 정거장에 오래 머물지 말고

얼른 다음 여행지로 떠나세요.

-123쪽

평소에 나는 전의 일을 되새김질 하는 스타일이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다 보니 실수한 걸 돌아 보며 계속 자책하고 힘들어 한다. 그리고 나한테 말을 함부로 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계속 화를 낸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성경에서도 말하듯이 화가 날을 넘으면 나만 힘들어진다. 그럴 때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과 감사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렇게 또 하루이틀이 자나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져서 평소와 같은 일상이 이어진다. 그래서 나도 되도록이면 부정적 감정이라는 정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정거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스님이지만 설령 무교이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느리게 간다고 하더라도 늦지 않을 거라는 위로가 필요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책을 제공해주신 수오서재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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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듬기 - 일상을 깨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법
히로세 유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수오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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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살면서 딱 느낀 것은 내 마음이 지옥이라면 어딜가나 지옥이라는 것이다. 내가 설령 비행기 1등석에 탄다고 해도,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나라를 여행한다고 해도 내 마음이 지옥이면 어떤 좋은 곳에 있어서도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접어드니 내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이건 혼자서 하긴 어렵다. 주변의 조언이 필요할 때도 많고 어떤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다. 히로세 유코의 <가다듬기>는 그런 내게 시기에 맞춰 마음을 가다듬는법을 알려준 책이다.

이 책은 언스플래쉬에서 이미지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더 빠져서 읽을 거 같다. 그만큼 감각적인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 책 곳곳에 자리한 여백이 날 대신해 숨을 골라주기도 하지만 세련되고 고요한 사진들이 그 틈새로 나에게 위로를 전한다. 글을 따라 책에 빠져 들다 보면 사진에도 흠뻑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목이 '가다듬기'라 그런지 몰라도 머릿속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픈 구절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이곳에 집중할 것'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나'라는 사람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이어진다. 일할 때는 일에, 요리할 땐 요리에, 청소를 한다면 청소에, 누군가를 만난다면 만남의 시간에, 온전히 의식을 집중하자. 우리는 눈앞의 무언가를 하면서도 다음 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절은 딱 나를 저격한 말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본디 나는 잔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A 업무를 하면서도 B업무를 걱정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업무 효율은 떨어졌다. 쉴 때나 친구랑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며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마음 상태가 좋을리가 있나. 컨디션은 안 좋아지고 몸도 지쳤다.

그래서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마음 가다듬기'라는 거에 난 동의한다. 그 순간에 충실할 때 마음은 치유받고 그 치유함으로 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 마음에 스며든 챕터는 '기쁨이 느껴지는 물건을 사용하라'이다.

"손을 들 때마다 기쁨이 느껴지는 물건이 있다. 그런 물건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그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정성스럽게 다루면 정성 가득한 공기가 자리에 감돈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용하면 그 마음이 공간까지 전해진다."

"마음이 춤추는 물건, 소중히 아껴 쓰고 싶은 물건은 사용하는 사람의 몸가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사소한 기쁨은 일상에까지 번기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공감하는 구절인 게, 평소에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해서 잡화점에 가서 클립이나 메모지를 사는 걸 좋아하는데, 예쁜 배지를 가방에 달거나 귀여운 클립을 서류에 꽂아넣으면 이상하게 안 그럴 때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그 물건을 곁에 두고 있으니 자연스레 그 물건과 가까이에 있는 물건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기분이 훨씬 상쾌해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서 안 그래도 요즘에 소중한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고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읽으니 공감이 많이 됐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깔끔하고 편안한 책이다. 마음이 편해진다.

인터미션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을 제공해주신 수오서재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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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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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게 느려 한 달에 많은 책을 못 읽더라도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서 책 읽는 게 좋았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다 보니 한 달에 책 한 권 읽는 게 그렇게 힘들다. 책 읽는 것도 체력이라는 걸 알아버려서 그런 건지, 주말에도 책은커녕 자기 바쁘다. 사실 이 책도 다소 많은 체력이 드는 책이었다.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워 해석을 많이 필요로 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죽음'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죽음'이란 자주 읽던 추리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소재여서 이를 심도 깊게 다룬 소설을 만나볼 기회가 흔치 않았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에게 죽음은 더욱 낯선 것이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어쩌면 죽음은 나이와는 정말, 상관없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낯선 책이 아니었다.

고독, 그것은 고립이 아니다. 무력한 전능감이다.

(...) 입가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다. 죽음. 그렇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15쪽

이 책은 죽음을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죽음에 대해 떠오르는 말들은 다 적어 놓은 책 같다. 장마다 피아노 곡이 소제목으로 적혀 있는데 사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저자 본인도 챕터를 쓸 때마다 즉흥적으로 정했다고 했으니 너무 의미를 부여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무튼 죽음과 관련된 심리가 다 들어 있다 보니 공감되고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꽤 많았다.

악몽은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의 현재적 현현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관하여, 그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갖은 불화와 실패, 실연과 상실뿐 아니라 그가 접촉하는 모든 종류의 꿈과 현실 전부가 그에게 고통을 유발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금언도 그의 고통 앞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시간은 고통의 누적이고, 누적된 시간 속에서 고통은 압축된다. 고통은 너무 거대해서 아무리 뒷걸음질 쳐도 돌아갈 길을 보여주지 않고, 너무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어 꺼내려고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

그는 고통이라면 아주 작은 벌레 한마리의 기척과 같은 것에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31~32쪽

고통을 너무나 잘 표현한 문장 같다. 나만해도 위의 구절처럼 당장 엄청난 고통의 감각으로 놀라는 게 아니다. 작은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미세한 느낌만 가도 흠칫흠칫 놀란다. 심장이 쿵 떨어진다. '고통에 아무리 익숙해져도, 고통 앞에서 아무리 무기력해져도, 고통에 마비되지 않는다(41쪽)'라는 문장이 딱 맞다. 사실 내 경우에도 익숙해지지도 않지만(ㅠㅠ).

멈춰 서서 왜 아무도 내게 신발을 신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물으면, 왜 신발에 대해 묻지 않았는지 되묻는 세계가 등 뒤에 있다. 원망하면, 왜 더 일찍 원망하지 않았는지 힐난하는 세계가 있어서, 아픔이 있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42쪽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건데, 묻는 것도 알아야 묻는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않겠냐고 하는데, 내가 뭘 모르는지 알아야 묻지. 가르치지 않아 놓고서 왜 몰랐냐고, 왜 묻지 않았냐고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는 하다하다 내가 모르는 것도 알아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옷장에 무서운 것이 있는 것 같다면서 옷장 문을 연다. 거기에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45쪽

와ㅠㅠ요즘 딱 내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 같다. 일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그런지 집에 와서도 실수한 거 없나 기억을 리플레이 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려서ㅠㅠ강박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빛을 등지고 서 있는, 빛을 향해 서면 등 뒤로 뻗어나간 나의 그림자가 하는 일을 볼 수 없으니까(50쪽). 그렇다고 아예 옷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도 못한다. '고통의 핵심에 다가가려 하면, 심해를 향해 내던져진 닻처럼 무한정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고통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니까(79쪽).

심적으로 많이 힘든 요즘, 적시적소에 만난 책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에게는 많이 어려운 책이라 아직도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 왔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죽음을 예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죽음을 얘기하며 나도 이랬노라 털어 놓는 소설이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소설.

태엽 같이 멈출 수 없는 인생일지라도 고장나 망가지지 않기를.

소설Q 서포터즈로서 받는 마지막 책이지만 곧 머지않아 다시 창비의 좋은 책을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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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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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제목만 듣던 책의 감상을 듣는 게 좋고, 읽었던 책의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은 그런 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여행만 이야기해도 재미있고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재미있는데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한 에피소드마다 여행지와 그 장소와 관련된 책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여행지와 책을 소개하는데 1장 <내 삶은 온전히 거리에서 채워진다>서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일본 가루이자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실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일본에 별로 가고 싶진 않지만 이 책만큼은 무척 좋은 책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김영사 서포터즈를 하며 알게 된 책인데 청량한 여름 분위기와 시원한 별장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좋았던 책이다. 저자말마따나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문장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책이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상실을 어떻게 이토록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장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도시에 파묻혀 살아서 그런가 평화로운 별장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면서도 결말만큼은 무척 현실적인 책이었다.

두 책을 읽으면서, 모든 생각을 버리고 이곳으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작은 풍요를 날마다 누리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이 소멸해가는 세월 속에서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건 이토록 구체적이면서도 사소한 것들이다. 곧 사라질 희미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런 사소한 아름다움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닐까."

요즘 정말 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서 그런가 이 문장이 더 눈에 들어왔달까ㅠㅠ진짜 살다 보면 엄청난 것 때문에 기운을 얻는 다기보다는 정말 사소한 거에 위로를 받는다. 예를 들어, 그날 그냥 대표한테 안 깨지고(...) 무사히 지나간다든지, 친구와 즐겁게 통화를 했다든지, 그런거. 일본 가루이자와가 아니더라도 그곳과 같은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고 싶다.

2장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그리스가 기억에 남는데, 아무래도 워낙 유명한 책인데 내가 안 읽어봐서(...)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이 문장이 좋아서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나 자신으로만 살고 싶었다. 그 무거운 이념으로부터,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로부터,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나도 때때로 나만 생각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의 뭐, 누군가의 뭐, 이런 거 말고. 이념, 종교, 그런 거 말고. 좀 그런 거 말고. 미래의 뭐뭐 그런 거 말고 말이다.

"내가 열일곱에 애를 낳았거든. 내 아들이 똑같은 짓을 하네. 올해 열일곱인데. 아무래도 유전자에 뭐가 있나 봐."

이런 말을 하며 그녀는 깔깔거렸다. 그녀가 내일을 계산했다면 아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들이 앞날을 깐깐하게 따졌다면 손자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계산 없이 현재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에는 아직 청춘의 호기로움이 살아 있는 걸까.

종종 당장 몇 년 후까지 걱정할 때가 있는데 그냥 현실에 충실하는 게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그녀처럼 웃을 수 있을까. 사람을 살게 하는 빛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3장 <지친 허리를 일으켜 다시 한 걸음을 뗀다>에서는 <모스크바의 신사>/러시아 모스크바가 인상 깊었는데, 이 책도 제목은 몇 번 들어본 거는 같다. 스토리도 몰랐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호텔의 2.8평짜리 다락방으로 종신 연금형을 당한 백작의 이야기인데, 우물 안 개구리나 구시대의 상징으로 남기를 거부한다는 스토리가 너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종신 연금형을 당한 백작도 이렇게 사는데 나도 우물 안 개구리나 구시대의 상징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때문에 그 나라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된 거 같다.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시간의 성질까지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백작의 삶이 증명했다"라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나도 좀 더 내 장소를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끝으로 이야기를 끝맸는데 참 책과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좋았던 점은 끝에 책 소개를 간단히 덧붙이고 어느 출판사에서 냈는지, 누가 옮겼는지도 써놓았다는 것이다. 출처를 밝히려고 써놓은 거 같긴한데 이상하게 세심해 보였달까. 그리고 문장도 깔끔해서 가독성도 좋다.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으스대지 않는 저자의 자세도 좋았다. 퇴근하고 나서 이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잔잔한 책에 마음이 편해졌달까.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아마도 이 책을 떠올리게 될 거 같다. 그만큼 여행에, 책에 충실한 책이었다. 더욱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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