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랙코미디는 무엇일까.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해학'과 '풍자'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40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였던 앙드레 브르통의 '블랙 유머 선집'을 시작으로 '블랙코미디'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어느정도 불편하지만 그걸 상쇄하는 통쾌함을 알려주는 코미디로, 비극적인 요소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유병재 작가의 말처럼 '블랙코미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건 영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이 그 블랙코미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성스레 알려준다. 마음은 뜨끔뜨끔한데 입은 웃고 있는 장르가 바로 블랙코미디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일종의 시집이다. 뒤표지에도 '자학의 시'라고 적혀있다. 하상욱 시인을 시작으로 기존의 시 형식에서 탈피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나는 이 작가를 매우 좋아해서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고 '좋아요'도 많이 누르는 편이었는데, 또 한 번 '개성' 있는 시인을 만난 거 같아서 기쁘다. 그것도 '블랙코미디 시인'이라니.


그렇기에 이 책은 '농담'집이지만 절대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이미 이 책은 SNS를 통해 내용이 상당히 많이 알려져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글들 중에서 상당히 무게를 지닌 글도 많다. '일부러 찔리라고 쓴 거 같다'라고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 하나를 발췌하자면,

나는 그냥 꼴리는 대로 사는 주제에 나중에 나름의 이유를 갖다붙이지 않는지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그걸 신념이라고 부르지는 않는지 돌아봐야겠다.

이 글은 3장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수록된 '신념'이라는 글이다.  평소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최대한 신중히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이 글을 읽고 정말 그랬는지 돌아봤던 거 같다. 나로서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어쩌면 단순히 마음속 어린아이가 칭얼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미 그 소리에 결정을 내리고 그 후에 이유를 갖다붙이지는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블랙코미디라는 것을 별로 접해보지 못해서 원래 그 장르의 특성이 '직설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본 책 중에서 가장 솔직하다. 너무 솔직해서 지하철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몇몇이나 웃음이 번졌는지, 아마 그때 내가 내 표정을 볼 수 있었다면 아예 웃음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정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얘기한다. 예를 들어, 1장 '블랙코미디'의  '오늘의 나'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어제의 나 개**야ㅠㅠ 너 때문에 뺑이 치게 생겼잖아 부탁한다 내일의 나ㅠㅠ

우와. 이렇게 욕을 대놓고 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고전'이나 '추리소설' 같은 번역된 책이나, 역사 및 단편집 등을 주로 읽다가 이렇게 곧이 그대로 말하는 책을 만나서 기뻤다(?). 그것도 시가 이렇게 말하다니! 가식이라고는 일절도 없는 책이다.  충격의 개새끼 

유병재의 '농담'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도 하고, 의심하지 않던 마음속 무언가를 콕콕 찌르기도 한다. 마땅히 '블랙코미디'라는 타이틀을 달 자격이 있고 그렇기에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만한 책은 아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코미디'가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사회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에 둘러싸여 기분이 하루에 수십 번씩 바뀌는 것이 지쳤다면, 이를 공감해줄 '솔직한 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꺼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블랙코미디'가 마련되어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계가 언젠가 사람을 대체할 것이다. 기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 현재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함으로써 위 문구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예전에는 통화나 문자만 잘 돼도, 혹은 핸드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를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컴퓨터를 굳이 켤 필요도 없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기계 하나면 웬만한 일은 금방 처리 가능하다.


그렇다면 시간이 우리에게 앗아간 것은 무엇일까. 세상은 발전을 계속 거듭해가고,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우리는 딱히 손해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세상이 사람이 쫓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수록 사람의 입지가 어떻게 되는지, 그들과 우리의 자리는 어떻게 될지. '에레혼'은 이 두려움에 의해 누구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고립무원에 갖혀있는 한 나라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풍자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한 단어로 얘기하면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역사의 중대한 전환장이었다. 이때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이 이루어졌고 흔히 떠올리는 공장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기계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익숙한 경제 용어인 '대량생산'은 이 시스템으로 가능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이 여러 식민지를 두었던 시절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책 초기에 주인공이 한 식민지로 들어가 금이 나올지도 모르는 새로운 땅을 꿈꾸는 건 바로 이러한 배경을 알아두고 읽으면 훨씬 잘 이해가 된다. 주인공은 단 한 번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그렇기에 소설이 아니라 '현실'같다. 누구나 일기를 쓰거나 기록을 할 때 구태여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주인공은, '그'는 자신이 내딛을 땅이 어디일지도 모른채 한 원주민과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당장 필요없는 '조연'은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조연이 물러나고 주연만 남은 상황에서 그는 당연히 현실로 돌아가 안정을 되찾기 보다 목숨을 잃더라도 이상을 좇는 길을 택한다. "사실 이토록 대단한 목표를 눈앞에 두고도 목숨이 아까워 고개를 돌린다면 대체 목숨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 독백은 주인공의 의지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이 의지는 그를 '에레혼'으로 이끈다.


그는 거기서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용하고 침착한 태도와 위엄이 이쓰면서도 편안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은 '밝은 머리색'을 가진 주인공을 '나름' 친절하게 대접한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은 그가 살던 세상과 사뭇 달랐는데, 그것이 바로 '기계와 병에 대한 멸시'이다. 시계를 가져온 주인공을 경계하고 잠시 감옥에 간 그가 감기에 걸리자 그를 보살피던 여인이 갑자기 냉랭해진 모습은 굳이 '멸시'라고 적어놓지 않더라도 그랬음을 알 수 있다.


책 뒤표지에도 '산업화와 비인간화가 확대일로인 당시 영국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이자 AI의 도래를 예견한 미래소설의 걸작'이라고 쓰여있다. 다만 알고 있음에도 당최 무엇을 풍자하는 것인지 몇 십페이지를 읽었음에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아픈 사람이 비도덕적인 사람보다 경멸어린 시선을 받아야하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는 나중에 나왔지만, 후자는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문구 때문이다.


우리가 가난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사귀기 싫어하듯이, 에레혼 사람들은 이런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기 때문에 친구들과 거리가 생기게 된다.

이 소설은 '기계' 만큼이나 '병'과 '비도덕'을 다룬다. 에레혼의 왕과 여왕은 주인공을 어떤 집에 머물도록하는데, 그 사람은 무려 '횡령'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인공이 거부감을 보이자 주변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까지 그가 고통스러운 걸 동정'하기 때문이며, 아픈 사람은 그가 건강한 신체를 태어나지 못한 불운을 가진 사람이기에 마땅히 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존경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 피고가 존재한다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질병을 경시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폐병에 걸린 23살 젊은이에게 에레혼 판사가 하는 말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저런 사회에서 살면서 잘못된 것을 모를 수가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이는 이 말로 설명할 수있다.

뛰어난 교양과 탁월함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세대에 걸쳐 어린 시절에 노출된 왜곡된 시각에 의해 뒤틀린 관점을 갖게 된 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

주인공은 에레혼의 엘리트 인물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이 문장을 읽고 한국사 공부를 할 때의 어떤 강사분이 떠올랐다. 조선시대에는 정말 불합리한 일들과 불평등이 존재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였다고. 예를 들면 사람이 노비로서 '재산'이었던 그 시대에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의 구조는 흠집이나 틈이 발견되지 않는, 절대적이었던 시스템이 그렇다. 먼 미래에서는 '어떻게 그랬지'라고 평가할 만한 일이 현재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 수 있다. 미래에서는 미개하다고 비웃을만한 부분들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비도덕은 관대하게 넘기면서 병과 불운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자비한 판결들과 시선들을 보내는 에레혼 사람들의 모습. 이는 그저 어리석다고 치부하며 마냥 웃고 넘길만한 부분이 아니다. 우리가 소설 속에 인물들이고 우리를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과연 그들이 책 속의 우리들을 '에레혼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에레혼 사람들은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비도덕은 이를 저지른 사람을 당장은 죽음으로 끌어당기진 않지만 병은 죽음의 두려움을 물씬 느끼게 만든다. 문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에레혼 사람들은 배우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기계의 존재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공포에 젖게 만들었다. 책속에 나오는 '논문'을 보자.

증기기관에 의식 같은 것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의식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가?"
기계에게 영향을 미치고 기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듯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계다. 인간은 현재의 다양한 고통을 겪거나 아니면 점차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의해 스스로 대체 되는 것을 보는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해야 하며, 그러다가 들짐승이 인간과 비교되지 않듯 인간도 기계와 비교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을 너머 AI가 인간 우위에 서는 영화들이 자주 등장하는 현재, 이 문장은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소설은 19세기에 쓰여졌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2018년의 독자도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고전'이라 전해지며 명작이라고 평해지는 작품들은 몇 백년, 몇 십년이 흘러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입하고 그들과 그들의 상황을 몰입하게 만든다. 명작은 사람들의 '공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계에 대한 에레혼 사람들의 공포가 과연 낯선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 공포에 대한 에레혼 사람들의 극단적인 행동이다. 바로 기계를 '전부' 없애버린 것. 사람들의 태도는 꽤나 '젠틀'했지만 그들이 다소 시대에 뒤처진 듯한 사회상을 지닌데에는 이러한 맥락들이 숨겨져 있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 이 감정은 '기계의 책 1~3'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꽤나 어려운 부분이다. '공포'라는 한 단어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의 지식과 노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있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이다. 이 부분은 책속의 논문이지만 진짜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기계의 책'은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영혼을 쏟아부은 듯한 품격있는 논문이었다. '기계를 모두 파괴해버리자'는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말을 몇 십페이지에 걸쳐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감탄해 마지않는 부분이다.   


'에레혼'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만 다 풀어놓다가는 아예 정말 '논문'을 쓰는 편이 낫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고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에레혼을 간단히 평하면 이렇다.

에레혼은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서술에 매료되어 계속 읽었다. 촌철살인의 풍자가 곳곳에 숨어있어서 이를 읽을 때 '사이다' 같다고 느낀 적도 많다. 에레혼은 단순히 풍자소설이 아니다. 풍자를 매우 품위있게 풀어놔서 우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뒤표지에도 나와있지만 에레혼(Erewhon)은 'Nowhere'의 거꾸로 쓴 버전으로 유토피아의 역으로 상징한다. 부조리와 비도덕, 공포가 넘실거리는 디스토피아. 정말 그곳은 'No Where'인가,
'Now here'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글 2010 활용백서 (2007 포함) 컴퓨터 활용의 모든 것
김희수.오치훈 지음 / 에듀크라운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름 '한글'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워드를 사용할 때보다 헤맬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기능이 있을 때는 내용을 워드로 옮겨와서 작업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한글 2010 활용백서'를 알게 되어 이 책을 통해 한글을 배워봤습니다. 목록을 넘기고 나면 소제목과 함께 핵심 내용(이 파트는 뭐에 대한 셜명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나와있는데, 책에 나와있는 대로 내용을 적고 따라 해봐도 되고 아니면 따로 적용해보고 싶은 샘플이 있으면 그 샘플로 연습해도 문제없습니다.

활용백서에는 '하나 더!!'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이 코너는 '무조건 알아두세요!'라기보다는 '알아두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부분입니다. 단축키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기능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2007' 버전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2010이 아닌 2007 버전의 소유자도 충분히 이 책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사진 밑에 '한글 2007 버전' 설명도 쓰여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도 2007 버전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 부분은 꼭 읽고 넘어갔습니다.

파트마다 제일 뒷부분에 '연습문제'가 마련되어 있는데요, 워드나 엑셀만큼 어렵지 않으니 긴장할 것 없이 편하게 풀어도 될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한글 2010 활용백서'는 이런 분들에게 필요합니다.
1. 문서작업 할 일이 많은데 '한글'에 대해 1도 모르겠는 경우(ㅠㅠ)


2. 한글은 많이 사용해봤지만 헷갈리거나 잘 모르는 기능들이 있어 답답하신 분들

3. 자격증 취득할 생각은 없다! 전체적으로 한글에 대해 잘 알고 싶은 분들.


한글을 공부하려고 하시는 분들 중에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나 ITQ의 '한글파워포인트' 자격증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이 활용백서는 자격증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평소에 '한글'을 자주 사용하시는 분들 중에 전체적으로 '한글'을 파악하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책입니다. '너무 많은 내용은 필요 없다! 부담되지 않게 핵심만 뽑아서 알려달라.' 라고 외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서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르만 헤세하면 주로 데미안이 연상되지만 초기작으로 입문하는 것도 좋아 읽어본 책. 기대 이상으로 여운이...그만큼 주인공에 이입해서 읽은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천재성이 맞물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기대하고 봤는데, ‘명철한 홈즈와 어리벙벙한 왓슨‘의 뻔한 구조여서 좀 아쉽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도 없으며 중요하다 싶은 내용도 스킵되어 말그대로 ‘기록‘을 읽는 다는 느낌에 가깝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