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우면 됐지.‘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말은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에서 나온 유행어로, 1등만 추구하는 한국의 풍토를 풍자한 말로도 유명하다. 오로지 1등에게만 환호를 보내는 씁쓸하고 슬픈 상황. 이 상황이 꼭 발생하는 곳이 있었다. 환호와 열기가 가득한 곳. 바로 ‘올림픽’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금메달’만 외치던 분위기에 참 많은 선수들이 울었었다. 메달의 빛과 상관없이 그저 즐길 수는 없었을까? 설령 메달을 얻지 못하더라도 박수쳐줄 수는 없었을까?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는 보기 힘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로 ‘토리노 동계올림픽(2006)’을 다루었다. 정확히는 동계 스포츠 도전기와 토리노 올림픽 관전기 2파트로 나누어진 이번 에세이는 갑자기 사람으로 변한 고양이 ‘유메키치’와 그와 같이 사는 ‘소설가 아저씨’, 그리고 편집자 ‘구로코 군’이 등장한다.

‘너 올림픽에 나가라!’는 외침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유메키치와 아저씨가 여러 스포츠를 도전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참 다양한 종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동계 스포츠에 대한 지식을 쏟아내는 ‘아저씨’의 모습이 무척 열정적이라 마치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작가의 열정이 아주 듬뿍 담긴 에세이라는 건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책의 3분의 1 정도가 ‘동계 스포츠 도전기’라면 그 뒤는 본격적으로 ‘토리노 동계 올림픽’의 관전기가 나온다. 사실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일본의 상황을 살짝 보자면, 이때는 동계 스포츠 강국인 일본이 침체기를 겪던 시기였다. 이때 일본이 얻은 메달은 아라카와 시즈카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얻은 금메달 1개였다. 거의 노메달이 될 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 명(?)이 종종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소설가 아저씨’는 일본 스포츠와 그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을 응원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올림픽을 즐기고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을 독자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애정이 깃든 비판은 덤이다.

그들이 여러 고초를 겪으면서 경기를 보러가는 과정도 꽤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화장실과 대중교통 문제로 툴툴 대는 아저씨라든지,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음식을 잘못시킨 구로코 군이라든지, 거의 사람이 다 된 유메키치라든지, 우여곡절이 가득한 이들의 여행을 보며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불필요한 부분을 깔끔하게 잘라내되, 필요한 부분을 잘 조합해서 이야기하는 작가의 연록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마냥 가볍게만 읽을 수는 없는데 바로 동계 스포츠에 대한 ‘아저씨’의 비판과 주장이다. 그는 한 종목에 에이스 한명만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즉 준에이스도 있어야 에이스가 부담이 적고, 설령 에이스가 실패하더라도 준에이스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둘째, 다양한 종목에서 인재가 탄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당시 일본 동계 스포츠가 침체기이긴 했으나 입상자(아쉽게 메달권에서 탈락한 선수. 4위에서 8위정도)가 많았다. 아저씨는 각 종목에 인재가 포진해있어야 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실로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 특히 한국을 비판하는데 살짝 울컥(?)할 수 있다(여담으로 한국은 전체 메달 순위 7위로 쇼트트랙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근거를 갖추고 하는 말이니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

관전기가 끝난 후 짧은 단편이 등장한다. 2006년 기준으로 무려 50년 이후가 나온다. 귀여운 고양이 유메키치가 시간여행을 해서 도착한 2056년이다. 그곳에서 유메키치와 노인들은 지구온난화로 사라진 동계 올림픽을 추억한다. 본편만큼이나 여운이 남는 단편이다.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는 동계 올림픽을 알짜배기로 알고 '경험'하기에 적합한 에세이이고 동시에 개성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소설’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자신은 제 3자로 설정한 게 신선하다. 덕분에 아저씨(?) 모습이 더 잘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

이 에세이의 귀여운 주인공 유메키치. 그는 겨울은 동물들에게 매우 가혹한 계절이라고 말한다. 체온을 빼앗기고 이동수단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조들이 무서운 겨울을 이겨낸 것에 대해 이렇게 독백한다.

겨울과 싸우며 살아간다……그 상징이 동계 스포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야생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겨울의 마법은 그것을 내게 알려주었는지 모른다.

갑자기 그를 인간으로 만든 ‘겨울의 마법’은 꽤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나보다. 하지만 배우기만한 건 유메키치뿐만이 아니다. 이 에세이를 읽는 독자는 동계 스포츠를 쏙쏙 알게 됨과 동시에 2006년 당시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때가 기억나지 않거나 경험하지 못한 독자라고 하더라도.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 벌써 3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아쉽다면 2006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2년 전이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다시 그때의 이야기가 시작되길, 겨울의 마법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