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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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단과 지식인 사회의 허울을 고발하는 자전적 소설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이 된 작품이라는 표제 문구만으로 이 책의 존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표지를 넘겨 목차를 확인하는 순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이야기의 슬픔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를 넘겨갔다.

사전 정보를 통해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임을 알았기에 더 처연한 감정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불화로 일찍부터 가정의 울타리가 견고하지 못했던 소녀 V는 일찍 어른아이가 된다.

V는 불안정한 듯 쓸쓸하고 허한 마음을 독서 탐닉으로 달래고, 성적 조숙아로 자란다.

이혼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디너파티에 나가 50세 작가 G를 만난 게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G는 자신의 주특기인 문학을 이용해 온갖 달콤한 말로 포장한 편지 공세로 소녀 V를 유혹하고, 14세 소녀 V는 그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다.

아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끌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고,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 직행한다.

그러나 G가 관계 맺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자신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고, G는 소설을 핑계로 거짓말로 일관한다.

결국 V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G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끊임없이 V의 삶 주변을 겉돌며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G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G가 법이 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나이가 15세라는 걸 알면서도 15세 미만의 소년 소녀들이 동의했다는 이유로(더 정확하게는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성년과의 성관계를 정당화 했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드러난 G의 이런 사고를 문화예술계 지식인들이 동조했다라는 것은 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물음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문학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가?"

G는 줄곧 인간이 가진 내적 욕망의 자유를 표현하는 게 문학이고 예술이라고 어린 V를 세뇌시켰다.

부모의 보호가 허술한 아이들만을 골라 제멋대로의 욕정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허울을 '사랑', '자유', '문학', '예술'이라는 말로 포장했던 지식인의 민낯은 30년이 넘도록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저자가 용기내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 견고한 성은 더욱 더 오래도록 깨지지 않은 채 위선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보호받지 못해 어른의 사랑에 일찍 눈을 뜬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가?

그래서는 안 되기에 법이 정한 테두리를 주목해야 한다.

어른이자, 문학가,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룰을 무시하고 자기만족을 취했던 가해자를 비난해야 마땅하다.

지켜주지 못한 청소년의 비행에 어른 모두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 자신이 겪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여검사의 발언을 기점으로 각종 문화계 정치계로 미투운동이 확산되어 큰 파문이 일었다.

'성인지감수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주요한 화두가 되었고, 이에 둔감한 사람은 지탄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성 착취'는 더이상 쉬쉬해야 하는 비극이 아닌, 공표해야 하는 사회문제이자 응징해야 하는 범죄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동의'의 반어적 의미에서 출발한 이 소설을 통해, 더 넓게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천착해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기, 소설 <동의> 반드시 읽혀져야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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