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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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가장 낯선 것에 대한 이야기

실패한 세계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선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그 세번째로 만나본 도서는 박솔뫼 작가의 <그럼 무얼 부르지>이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점들이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라면, 한 문장 안에 구어체와 문어체를 동시에 사용해 문장호흡이 긴 문체의 특징이다.

또 하나는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는 서술방식으로, 집중하고 읽지 않으면 문맥의 흐름을 놓쳐 앞으로 되돌아가 읽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라는 점이다.

그리고 서사가 주가 되는 소설이라기 보다 상징과 은유가 많은 소설이라는 점도 큰 차이점이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술술 읽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되짚어가며 읽어야 할 부분들도 많고, 곱씹어 생각을 해야할만큼 난해해 작품해설의 도움 없이는 작품의도를 헤아리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비록 가독성이 떨어지고 난해한 소설이었지만기엔, 주로 읽어오던 소설과는 이채로운 소설은 접해봤다라는 점은 문학을 하고자 하는 나에게 큰 수확이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작품 중 배경이 되는 공간의 연결성으로 연작의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 있다.

'구름새 노래방'이라는 공간에서 노래부르기를 강요하는 내용인 <안해>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

살인자가 숨어들었다는 바닷가 '해만' 배경으로 한 <해만>과 <해만의 지도>가 그렇다.

그 외에 <차가운 혀>'바'라는 공간을 통해 '무위 무욕의 젊은이'와 '세상 모든 걸 누리고 많은 걸 소유한 사장'의 대비를 보여주고, <안나의 테이블> '극장'을 배경으로 서커스 단원과 단장, 그것을 지켜보는 관람자를 통해 무언가를 하도록 강요받고 강요하는 관계가 보여진다.

표제작 <그럼 무얼 부르지>는 5.18을 미체험한 세대가 외국과 국내에서 5.18사건을 접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럼 무얼 부르지>의 주인공은 광주 출생의 5.18을 겪지 않은 세대로 미국과 일본을 여행하던 중 우연찮게 5.18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모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과서에 기록됐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 그 얘기들은 멀고 낯선 이야기다.

거기서 듣는 5월의 이야기는 마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이라거나 칠레의 피노체트가 저지른 일과 억압받았던 그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명백하고 비교적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처럼 들렸다.

<그럼 무얼 부르지> p.129

광주출생인 자신보다 더 5.18에 대해 더 심취해 역사적 의미를 찾는 외국의 지인 앞에서 주인공은 장막을 느낀다.

외국에서 듣는 5.18이야기는 외신에서도 집중보도할만큼 굵직한 자국의 역사적 사건임에도 무감하고 낯설게 다가올 뿐이다.

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 마치 아주 복잡한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기는 어디지? 하고 들여다보아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사자는 아니며 또한 명확한 세계의 시민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으므로.

<그럼 무얼 부르지> p.145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내가 의식하지 못한 이야기를 낯선 곳에서 낯선 타인에게 전해듣게 될 때의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가장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잘 안다라는 것은 물리적인 피상적인 거리가 아닌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가닿았는지에 대한 심리적 거리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다른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은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겉도는 인물들이다.

아무런 계획과 성취의욕 없이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차가운 혀),

우연히 놀러갔던 노래방에 감금돼 열심히 노래부르기를 강요받다 도망치는 인물(안해,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

사직을 하고 살인자가 숨어들었다는 섬에 들어가 한 시절을 보내는 인물(해만, 해만의 지도),

무엇이 되려고 애쓰고 애쓰는 것 자체를 비웃는 인물(안나의 테이블)

소설을 읽어나가며 이러한 인물과 마주할때 들었던 첫 느낌은 답답함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긍정의 가치로 여겨지는 열정, 의욕, 노력, 성실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품 해설을 읽고나서야 이들이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낙오한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이 소설에서만큼은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세상의 셈법과 속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등장인물들은 무위 무욕의 낙오자들일 뿐이고, 동시대의 낙오자들에게 그들은 동류의 패배자들일 뿐이다.

하지만 오랜 생각끝에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띠지에 기록된

'실패한 세계를 바라보는 눈, 보존되어야 할 문학의 자리'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여타의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패한 세계를 조명했다.

짜임새있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기보다, 상징과 은유에 빗대 현실을 겉돌고 부유하는 인물들의 실패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빠른속도로, 열심히, 최상의 성과를 내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실패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추앙할때 작가는 실패한 이들을 조명했다.

실패한 세계를 바라보는건 불편한 일이다. 누구도 실패를 원치 않기에......

모두가 주목하지 않은 불편한 그 세계를 기꺼이 응시한 박솔뫼 작가의 시선을 통해

문학의 영역은 진정 폭넓고 벽이 없다라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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