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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서포터즈 두번째 도서로 만나본 <여름을 지나가다>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에겐 강렬한 태양인데,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여름 한철 꼭
통과해야만 하는 장마, 우기의 기운이 전해지는 소설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여름'은 기댈 곳 없는 청춘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가장 에너지가 넘치지만 열매는 아직 얻을 수 없는 저마다의 여름을 지닌 청춘들에게 이
책을 안부인사처럼 전하고 싶다고.....
소설은 여름을 통과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민, 수호,
연주 각자의 삶이 교차 서술되는데, 모두가 상처를 안고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들 상처와 고독의
근원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부모의 이혼과 각자의
재혼으로 홀로 떨어져 생활비만 받은 채 정서적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자란
민
가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 전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지만 빚더미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자기 이름으로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길에서 주운 신분증
인물로 살아가는 수호
병약한 엄마를 수발하며
쇼핑센터 놀이공원 책임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삶이 버겁고 지겨워 늘 기차표를 끊어 먼 도시로 떠나고픈 충동을 안고 살았던
연주
이들의 여름은 각자의 사정으로 뜨겁게 타오르지 못하고 꺼질듯 위태롭게
흘러간다.
정서적 허기를 딛고 회계사로서 어엿한 직장인이 된 민은 1년 전 사내 후배
종우와의 결혼을 앞두고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사내 비리를 파헤치는 종우를 말리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종우의 반대편에 서게 되어 결혼이
무산되었다. 그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큰 기대없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취업해 매물로 나온 낯선 집에 30분씩 거주하며 타인의 삶을 살아간다.
수호는 타인의 신분증으로
취업한 쇼핑센터 놀이공원에서 연주와 일하게 되어 조금씩
애정이 싹트지만 충동적으로 연주의 통장에서 100만원을 인출하게 되어 연주 앞에 다가설 수 없게 된다.
낯선 타인의 집에
허락없이 머무는 민의 삶에 쉬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만큼 타인의 삶에 머물며 자신의 삶을 잠시라도 잊고싶어했던 민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 헤아려보려 애썼다.
충동적으로 타인
신분증을 도용하고, 호감과 연민을 느끼는 여자의 돈을 훔치고 괴로워하는 수호의
삶에서는 불안한 그의 내면이 가엽게 느껴졌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살아가면서 이제 막 관계를 맺어가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억울하게 뺨을 맞아도 화를 내거나 탓하지 않는
연주의 삶은 마냥 측은하기만
했다.
여러 사정으로 책을
몰입해서 단시간에 읽지 못하고 여러날에 걸쳐 읽었는데,
읽어갈수록 작년에
읽은 소설 <눈깜짝할 사이 서른
셋>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오버랩
되었다.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단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 면면이
닮았다.
다만 아쉬운 건
<눈깜짝할 사이 서른 셋>과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진 인물들간의 유대와 희망의 메세지가 <여름을
지나가다>에서는 흐릿했다라는 점이다.
민과 수호, 연주가
폐가구점을 매개로 서로 만나 서로가 가진 상처의 크기만큼 상대의 아픔을 알아보고, 얘기를 들어주고 부탁을 받고 들어주지만, 더 깊게 연대해나가지
못하는게 독자로서는 안타까웠다.
주인공들의 고독과
상처는 충분히 전해져와서 가슴아픈데, 혹독한 여름을 견뎌낸 그들에게 다음 계절의 온기가 채워지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이 소설을 통해 내가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나는 그 시기를 잘
통과했는가! 자문하고,
지금 내 주위에서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주인공 민이
그러했듯이 끝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외면하고 말았던 타인의 고독에 대한 상념에 마음 한켠이 스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