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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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음사 출판사 <오늘의 작가 총서>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어 첫 책 #이승우작가#지상의노래 를 읽어보았다.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기도 했고, 첫 표지 추천사를 읽는 순간 난해한 글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인지 도입부에 소개되는 소설의 주요 소재인 '천산 수도원의 벽서', '성경'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때까지만 해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입부를 지나 주요 인물 '후'와 '한정효'의 서사가 전개되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며 이내 작가가 창조해낸 촘촘한 서사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작가는 소설의 주요 소재로 '성경'을 차용한다.

성경이 스토리 전체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성경의 구절과 내용이 인물 서사와 연결되어 소설의 이해를 높이고, 등장인물이 내면을 드려다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작품을 읽으며 시종 놀라웠던 것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1~1980년대의 군부독재시대 배경 속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후, 한정효), 사건, 배경의 구성이 너무도 치밀하고 독창적이라는 점이다.

소설은 주요인물 후와 한정효의 두 서사로 나뉘지만 두 서사가 이어지며 궁극엔 하나로 점철된다.

그리고 두 인물이 문제의 근원과 해답을 찾아가는 데 '성경'이 매개체로 작용한다.

첫번째 서사 후의 이야기!

한 개인이 혈육애 또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근본적으로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구성이 탄탄하게 전개된다.

또 하나의 서사 한정효의 이야기!

누구나 알법한 실존인물(박정희, 전두환 등)의 권력유지를 위한 가학성과 그로 인해 훼손되는 인간성이 소설적 허구로 독창적으로 재창조돼 5.18사건 못지않은 참혹함을 마주하게 된다.

한때 각하 측근으로 권력의 단맛을 보며 각하를 보필하던 한정효가 실존인물 김재규와 오버랩되기도 하면서, 각하의 권력야욕에 소신있는 태도를 취하며 권력 밖으로 내쳐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며 '이곳'의 부당함이 어쩔 수 없이 불러내는 '저곳'의 이미지에 대하여 생각했다고 한다.

두 서사에서 '후'와 '한정효'는 언뜻보면 이곳의 부당함으로 인해 자아를 잃어가는 '저곳의 인물'로 비춰지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심연에는 스스로도 들여다보지 못한 욕망이 잠재돼 있었다.

'후'가 사촌누나 연희에게 품은 감정, 한정효가 정치권력의 휘하에서 권세를 누릴때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를 살피지 못한 이기심이 그것이다.

후와 한정효가 각자의 사정으로 속세를 떠나 천산 수도원에서 머물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성경'을 통해 각자가 가진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게 된다.

후반부 독재정권이 행한 가학행위로 인해 수도원은 무덤(카타콤)으로 변하지만, 한정효와 후는 숙명적으로 이끌리듯 수도원을 찾아 한때 수도를 같이했던 '형제들'의 시신을 편하게 누이어 안식할 수 있는 곳(체메테리움)으로 만들고, 뒤이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성경구절을 벽에 필사함으로서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이 깨달음을 통해 죽음을 앞둔 순간 한자 한자 적어내려간 성경 구절이 '지상의 노래'가 아닐까!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지상에 둥둥 떠있는 돌과 하늘의 구름이 가느다란 실로 이어져있다.

이게 무슨 이미지일까 내 나름대로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속세의 크고 작은 인간의 헛점이 무수한 돌로 상징화되어,

그 무수한 인간사의 근원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응시할 수 있게 하는 통로, 즉 '거울의 역할'이 하늘의 구름이 아닐까싶다.

깨달은 자만이 구름의 장막을 걷고 하늘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문체에 대해서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이승우 작가는 특유의 의미 반복의 문장을 중첩적으로 이어쓴다.

처음엔 그 문체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점차 언어의 유희가 느껴지면서 빠져들게하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단문이 아닌 장문을 쓰는 편이라 다소 문장호흡이 길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대구형식의 어휘 사용으로 문장의 맛을 살리는 매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각서를 받고 입을 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각서를 쓴다고 입이 봉해지겠느냐는 반문에 의해 봉해졌다(p.225)'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의미깊은 책의 마지막 문단으로 리뷰를 갈음하기로 한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곰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 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 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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