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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제도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0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오랜 여행을 했다. 낯선 이름을 어울리지 않는 표식처럼 들고 언어라기보다 소리에 가까운 자음과 모음을 내뱉는 이들과 함께.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은 쨍그랑 부딪히며 서로에게 이상한 방식으로 와 닿는다. 서로에게 별이 되고 지도가 되는 이들의 여행에, 나도 슬며시 끼어들었다.
다와다 요코의 'Hiruko 여행 3부작'의 1편 <지구에 아로새겨진> 를 읽고 작년에 2편 <별에 어른거리는>이 나왔을 때 재빨리 구매해 두고는 (이들의 말처럼)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는데, 이번에 마지막 3편 <태양제도>를 은행나무에서 보내 주셔서 재빨리 이어 읽었다.
낯익은 지명들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잘 아는 지도는 이상하게도 뒤틀려 보이는 이곳에서 떠도는 이들은 나라를 잃은 (정말로 ‘사라져 버린’) 고향을 띄엄띄엄 기억하는 말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저마다 모국어의 파편을 간직한 채 어디론가 떠난다. 3편으로 이어지는 이 낯선 지구 위에서, 이 비현실적이고 시간을 감각할 수 없는 인물들이 점차 형태를 입는다. 두 사람이 서로 성격을 바꾸는 당혹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파인애플 수다를 늘어놓고, 뜬금없이 춤을 추고, 서로 모르는 어디에도 없을 말로 소통을 한다.
서로의 말이 빗나가며 아슬아슬하게 부딪히던 1편에서, 결국 각자의 침묵 속으로 침잠하는 무거운 2편을 지나. 방향조차 알 수 없어진 여행을 끝없이 이어가며 이야기하고 춤추고 사랑하고 흔들리는 소동은 3편에서 분명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 현실의 어디에도 없는 기억이 물질이 되어 나타나는 곳, 환영과 기억이 손에 잡힐 듯 나타나는 곳. 지구와 솔라리스 사이를 떠도는 우주정거장에서 어디로도 닿지 못하고 떠도는 존재들. Hiruko와 여행자들이 목적지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그 배는 솔라리스의 우주정거장, 혹은 끝없는 바다에서 영원히 떠돌 운명인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나 다름없다.
3편에서 언어의 뒤섞임이 더욱 세밀하게 감각되고 정박하지 못하는 항해가 이어질수록 나는 목적지 없는 이 여정의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종착지에 가까워지는 듯 마음이 두근거렀다. 이 3편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함께 기차와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배를 타고 그렇게 미래로 함께 여행해 왔던가. 떠남이라는 몸의 행위가 잊힌 말의 조각이라는 소리로 번역되고,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이라는 개념은 ‘나’라는 몸으로 단단하게 체화된다. 집을 찾아가다 스스로 집이 되는 이 여정에서 단 여섯 명이 나누는 말놀이로 떠남과 정주, 집과 세계를 경계 없이 풀어놓는 이처럼 놀라운 가능성의 세계라니.
이 책을 만나며 편집자님이 보내는 <태양제도> 뉴스레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와다 요코의 책을 모은 지도를 보니, 나 역시 이 책의 1편이 꽤 마음에 들었던지 그의 책 여러 권이 (아직 펼치지 않은 채로) 쌓여 있다. Hiruko의 여행에서 시작해 언어와 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그의 불가사의한 세계에서 나는 또 기꺼이 길을 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