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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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라 여겨졌던 작가들의 재발견, 그 치열한 고민과 투쟁을 담은 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문학, 고전 인문은 주로 백인 남성에 의해 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수많은 고전을 읽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여자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백인 남성인 작가들과 자신을 동화시킨 적도 있었으리라. 백인 남성이 쓴 고전들이 훌륭한 책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 책들에는 고통과 소외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진 않다. 사회의 약자, 소수자로서 살아왔으며 자신을 압제하는 압제자들과 싸워본 이들의 글은 그들과 같은 약자들의 힘이 된다. 이라영 작가는 가난, 성차별, 비거니즘 등 소수자와 그들의 권리에 대한 저서 및 칼럼들을 다수 쓰신 분으로써 남다른 감수성을 지녔다. 특유의 감수성과 예민함으로 책 속 작가들과 현대 한국의 상황을 연결 지어 소개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1800~1900년대의 미국과 2020년의 한국은 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가 똑같다고 느껴진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는 총 21명이다. 작가를 선정할 때 비중 있게 고려한 것은 지역의 다양성이 아니었을까? 책의 첫머리에 있는 지도를 보면 추측할 수 있다. 미국 지도가 주별로 나눠져있고 주마다 한두 명씩 작가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알라디너 TV 북토크에서 이라영 작가는 이미 유명한 동부와 서부의 작가들 보다는 중서부나 중부의 작가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또한 아시아인, 흑인, 여성, 레즈비언 등 기득권층에서 소외된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라영 작가는 수년 동안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간결하고 빠르게 읽히며 한편으로는 단호하다. 한국에서 소외자로 살아가며 느꼈던 불편함과 답답함이 있었지만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려웠는데 작가가 본질을 꿰뚫으며 비판해 주면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라영 작가의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더욱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있는 글을 쓸 수 있었던 작가들을 소개해주고, 소외자의 편에 서서 독서를 하고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모두 찾아 읽고 싶어지는 마음도 들게 한다.




알고자 하는 욕망의 정체가 주류의 인정인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인지에 따라 지적 활동의 경로는 달라진다. 서양 고전을 꿰뚫고도 정작 한국 여성들의 일상적 폭력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무지의 갑옷을 두르고 지적인 언어를 뱉는 사람들(남성들)을 길거리 편의점처럼 자주 본다. 이때 지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의도하는 의도하지 않든 바로 타인의 고통을 찌르는 도구로서의 지식이 된다. 저항을 위한 무기가 아니라 권력이 되어버린 지식의 언어들이 그렇게 세상을 휘젓는다. 권력욕을 지적인 욕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지식인'이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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