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로 했으면 영화를 보면 되지, 어떻게 가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한 문제인가 모르겠다.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그냥 그러라고 할 순 없었던 걸까. 나는 어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의 태도로 인해 일상의 대화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을 완전히 자각한 뒤부터 자주 괴로웠다. - P205

기상에서 취침까지 하루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자기를 배려하기 위해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다. 자기는 타자와 마찬가지로 배려하고 돌보아야 하는 하나의 세계인 셈이다. 그리하여 푸코가 말하는 ‘자기에의 배려’를 실천하는 주체는 자신의 내면과 영혼으로 회귀하면서 동시에 세계와 타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수행’이라고 표현되는 타자와의 관계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자기의 윤리와 미학을 재구성하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 P231

하지만 희망이란 때때로 멀쩡하던 사람까지 절망에 빠뜨리곤 하지 않나? 아니, 오로지 희망만이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게다가 희망은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면이 있는데, 우리들은 대체로 그런 탐스러워 보이는 어떤 것들 때문에 자주 진이 빠지고 영혼의 바닥을 보게 되고 회한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 P237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 P264

더이상 마누라들은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정신, 자아, 때론 몸까지 모두 아웃소싱했다. 우리는 주인 자격을 잃었다. 딸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결국 문의 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딸들은 사랑하든 혐오하든 우리를 본다. 볼 수밖에 없다. 자식이자 주식—나는 딸의 백 퍼센트 주주다—으로서의 운명이다. 하지만 나는 후일담이나 꾀죄죄하게 늘어놓으며 추앙받고 싶진 않다. 처절하게 부정되고 가열하게 척결되고 싶다. - P327

민중은 개미다. 우리가 했던 건 뭔가. 개미 행렬의 패턴을 읽고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개떼가 흥분해 왈왈 댔다.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나는 이를 꽉 물며 손을 비틀어댔다. 네 딸년들은 파브르의 시점을 갖겠지. 내 딸이 식별 불가능한 개미의 얼굴을 하고 흙에 고개를 처박은 채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복잡한 개미집을 짓고 있는 동안, 물웅덩이 앞에서 한없이 당황하는 동안, 네 자식들은 조감하며 거기가 아닌데, 그렇지 거기지, 하겠지.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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