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것은 가상공간에서 열광과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데카당스’로 표현이 가능한 이 일군의 무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남들을 이겨먹기 위한 온갖 기행을 반복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행위 자체가 현실에 대한 냉소임과 동시에 가상적인 것에 대한 열광이다. 이런 기행 경쟁이 현실의 자신에게는 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헛심을 쓰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가상공간에서의 데카당스적 열광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문제에 대한 판단 중지를 선택한다. - P127

문제는 이 냉소가 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고통을 맞닥뜨릴 때 벌어진다. 취업이나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고통을 게임화해서 표현하는데, 여기에서는 세이브도 할 수 없고 로그아웃을 할 수도 없다.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에 비교하며 망했다고 자조하지만 현실에서는 게임의 논리를 적용할 수가 없다. 망친 게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망친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남은 방법은 오직 입으로만 이 죽음을 향유하는 것이다. 죽고 죽이는 어떤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온라인의 유행은 이런 맥락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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