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오윤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장경은 방대한 불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는 ‘장(藏)’을 ‘그릇’이라고 하였다. 그릇 안에 어떤 물건을 담아 간직하듯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겠다. 부처가 처음 가르침을 베풀 때는 그 가르침을 문자라는 그릇으로 못하였고, 오로지 사람의 기억이라는 그릇 안에 담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그릇의 역할을 한 제자가 아난이다.

아난은 부처가 열반에 들 때까지 곁에서 온갖 수발을 들은 제자로 유명하다. 아난 개인의 기억 속에 있던 가르침은 가섭을 필두로 한 오백 나한 제자들의 기억의 그릇으로 옮겨지고, 그 많은 기억들은 문자라는 그릇으로, 또 세상 각지의 그릇으로 옮겨지면서 부처의 가르침은 양적, 질적으로 방대해졌다. 그렇게 방대하게 된 가르침, 즉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을 모으고 모아 목판이라는 그릇에 새겨 넣은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장경이다.

 

고려대장경이라고 하면 보통 해인사에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고려 현종 때 판각한 초조대장경과 의천이 주창하여 판각한 속장경, 그리고 현재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재조대장경을 합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이 침입해왔을 때 불력(佛力)으로 적을 물리쳐 나라를 보호하겠다는 기원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원하자 거란군이 물러났고, 마침내 불력으로 적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팔만대장경도 초조대장경이 그랬던 것처럼 불력을 몽골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해 당시 강화도에 퇴각해있던 최씨 무인정권에서 판각한 것이 지금까지 보전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장판각과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참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자랑이 과장이 되어서 마치 세계 최초의 대장경이고, 웅혼한 구양순체로서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씨체가 똑같고, 그 팔만 장이 넘는 판각 안에 오직 단 한 글자만의 오자만 있다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이며, 고려의 초조대장경은 그 개보장을 엎어놓고 똑 같이 베껴 새긴 것이며,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엎어놓고 다시 베낀 것이 사실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 동안 유일무이하고 세계 제일이라고 자긍심을 갖고 있던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 실제로는 모조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랑스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알자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 인징은 우리 대장경을 보고 ‘진미(盡美) 진선(盡善)한 만국(萬國)의 무쌍(無雙)’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당나라의 현장은 직접 천축, 즉 지금의 인도에까지 가서 수많은 불경을 가져와 한역(漢譯)을 주도하여 삼장법사로 이름이 알려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바로 현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오장법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 오장법사는 바로 대각국사 의천을 가리킨다. 의천은 왕자의 몸으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였고, 30세 무렵에 남송에 가서 수많은 불교 서적을 수집하여 돌아와 속장경이라고 알려진 교장(敎藏)을 판각한다.

초조대장경이 지금의 팔만대장경과 비슷한 규모였고, 의천의 교장이 또 그와 비슷한 규모였다고 하니 두 대장경을 보관하던 대구 부인사의 장경각은 아마도 어마어마한 규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몽골 침략군이 불을 질러 없애버렸으니 너무도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의천이 수집하고 출판한 덕분에 많은 불교 서적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하니 이는 또한 다행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시대의 주인공 의천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때 불경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은 목판이었다면, 현대의 가장 좋은 그릇은 인터넷이다. 고려대장경은 이미 인터넷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대장경을 전자화한 수많은 노고가 이 책 속에 담겨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사실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대장경의 진실한 면목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의천이라는 인물을 새로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올해가 고려대장경이 새겨지기 시작한지 천 년 째 되는 해라고 한다. 이 책이 참으로 의미가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