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익문사 1 - 대한제국 첩보기관
강동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제국익문사’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 나름대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여러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 기관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자신에게 정보의 통로가 막혀있다고 생각한 고종이 조선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파악하기 위해 이 기관을 창설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관보를 제작하거나 공문서용지를 보급하는 일을 했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국가정보원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국익문사 요원인 이인경이다. 이 소설은 이인경이 일본 거물정치인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쳐 일본헌병대에 체포되고, 재판 없이 처형된다는 말에 자신의 행적을 일본헌병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인경보다 더 주인공은 아마 우범선일 것이다. 우범선은 실재했던 인물로 민비시해(을미사변:1895년)에 직접 가담했던 인물로서 당시 조선군 훈련대 지휘관이었다. 그 사건 후에 일본으로 망명해서 살다가 조선왕실에서 보낸 고영근이라는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우리나라의 농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우장춘 박사의 부친이 바로 이 인물이다. 우장춘 박사는 우범선이 살해된 후 일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 우범선이가 조선의 왕비시해에 가담했던 조선의 역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국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심정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농업 발전 연구에 힘을 다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또한 우리 역사의 하나의 슬픈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우범선이가 고영근에게 살해되지 않고 중상만 입었는데, 자신의 부하로서 자신을 배신한 최경후의 시체를 자신이라고 속이고, 우범선은 최경후라는 인물로 살아가면서 조선 왕실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나온다. 이 소설에서 보면 원래 우범선과 제국익문사의 수장인 장동화, 이인경의 아버지인 이주회는 젊은 개화파 인물로서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였던 갑신정변에 가담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후에 장동화는 외세의 힘을 빌려 조선을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결국 조선의 멸망만 재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근황으로 돌아서고, 우범선과 이주회는 을미사변에 개입되어 우범선은 일본으로 달아나고, 이주회는 잡혀 처형되었던 것이다.

우범선은 자신의 살해 위협을 항상 느끼고 살기 때문에 매우 철두철미한 인물이지만, 이인경만은 자신의 동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인정을 봐주다가 결국 이인경에 의해 음모가 발각되고 죽게 된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만큼 가정을 많이 하는 것도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만일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만일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정하면서 역사를 읽는다. 또 만일 현재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하는 가정을 하면서 교훈을 얻는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서 조선말의 그 상황으로 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의 개화와 개혁을 위해서라면 우범선과 같이 국모시해라는 천인공노할 패역질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 조선이 결국 망할지를 알면서도 왕과 왕실을 위해 이 몸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이완용과 같이 러시아에 붙었다 미국에 붙었다 일본에 붙었다 하면서 일신을 보전할 것인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또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최악이라는 것도 없다. 그것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돌아보면 고종은 무능하고 기회주의자였으며, 민비에게는 조선과 조선백성이란 안중에도 없고 자신과 자신의 척족만 있었을 뿐이다.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지 않았더라도 조선의 이씨 왕실은 어떤 식으로든 통치 행위에서 제거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무조건 민비시해에 가담했다고 해서 지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하나의 정치 투쟁이라 볼 수 있다. 또 사실 을미사변에는 당시 미우라 공사의 지휘 하에 일본의 낭인들이 그 사건을 저질렀지만, 그 이면에는 흥선대원군 이하흥도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이 사실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의 깡패무리가 궁궐의 담장을 뛰어넘어가 감히 일국의 왕비를 죽이고 욕보이고 불에 태웠다는 것만 강조한다.

이 소설은 단지 우리가 일제로부터 치욕만 당했다는 1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왜 그 사건이 일어나야 했는가 하는 것을 당시 조선의 정세와 국제 정세에 비춰가며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왕비와 개화당은 세계관의 대척점에 놓여 있었다. 개화성물, 군민동치를 넘어 합중공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선 종주국을 자처하는 청을 견제할 외세, 다시 말해 일본이 필요했던 것이 갑신년의 우리의 처지였다. 반면,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힘을 가진 것이 확인된다면 쇠망해가는 늙은 청을 대신해서 왕실과 권력을 지켜줄 새로운 후견인으로 삼겠다는 것이 왕비의 정치적 목표였다. 그것이 왕비와 우리를 일시 묶어주었지만 결국엔 끊어내야 할 매듭이었다.”(2권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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