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 전세계적인 불황 속에 있는데, 불황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열된 경기가 진정되면서 필연적으로 불황을 초래하고, 이 불황을 통해서 다시 건전성을 회복한다는 치유의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불황의 상태를 인위적인 자극을 가해서 벗어나고자 하면 더 심한 경제적 문제점이 잠복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더욱 파괴적인 불황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불황의 상태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황은 인간이 경제 운용을 잘못한 결과에서 온 것이지 결코 자연적인 과정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불황의 상태에 빠지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그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바로 잘 알려진 ‘존 메이너드 케인스’이다.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듣는 경제 상황에 따라 이율을 높이거나 낮추고, ‘뉴딜’ 등의 이름으로 정부 주도로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 등이 모두 케인스의 경제 이론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이 책의 제목인 ‘불황의 경제학’이란 불황은 경기 순환의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병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극복 가능하며, 따라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70년대 이후 케인스 이론이 구시대 유물로 치부되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탈개입, 탈규제가 대세가 되고,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국가 간에 자본이 광속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케인스의 이론이 모두 폐기된 것은 아니다. 이자율과 통화량을 조절하고, 시시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것을 자유주의의 하나의 일부분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여겼고, 케인스에게서 온 것인지 잊었다고 하는 말이 맞겠다.

 

이것의 결과가 바로 ‘금융의 세계화’이다. 한마디로 ‘돈놀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자본주의’가 인류 역사 이래로 없었던 적이 없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극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을 것이다.

물론 경제 발전이 지상과제인 후진국이나 신흥경제국의 입장에서 외국의 자본은 가뭄의 단비와 같지만, 전혀 규제되지 않는 자본은 오히려 달콤한 독이 되어 기왕에 이루어놓은 발전조차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80년대 이후 이와 같은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였다. 맥시코를 시발점으로 한 남미의 경제위기나 태국에서 발발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 등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폴 크루그먼은 위기 상황에서 구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평상시에는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제약이 없이 돈놀이에 몰입하는 금융자본에 대해서 적절한 규제 조치를 해야만 이로 인해 초래하는 불황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미 불황에 빠져들었다면 이는 응급상황이므로 케인스의 이론에 따라 대규모의 적자 재정을 통해 공공사업을 벌이고,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이는 금융권에 대규모의 지원을 통해 서둘러서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주문하고 있다.

일본이 90년 이후 지속적인 불황에 허덕이는 이유가 바로 대규모로 전격적인 구제 조치를 하지 않고 언 발에 오줌누듯 찔끔찔끔 구제 조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 저자의 주장에 대해 전적인 긍정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에 저자가 언급하고 있다시피 2000년대 초에 ‘닷컴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시적인 불황에 빠져들었는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주택 거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택 거품’에서 비롯한 현 불황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또 다른 ‘거품’이 발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경제가 ‘거품’으로만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벌써 구제 금융으로 인한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달러나 유로화, 엔화처럼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는 화폐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불황이라고 해서 통화를 남발하게 되면 나중에 그 후유증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남미와 아시아의 경제 위기의 원인과 과정, 소로스를 대표로 하는 환투기꾼들의 활약상, 소로스가 파운드화를 공격하여 며칠만에 10억불을 번 얘기, 환투기꾼들이 홍콩 달러를 공격하여 패한 얘기,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게 된 과정 등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또 거시 경제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나아가 세계사에 대한 또 하나의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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