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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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세계화, 금융자본주의, 자유주의, 정보화 사회 등 여러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런 사회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시간적 여유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개인주의, 빈부격차 등으로도 이름 지을 수 있는 현대는 인간의 박탈과 소외라는 문제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호모 페이션스(고민하는 인간)’을 주장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엄청나게 빠르고, 이 변화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에게 ‘고민하라’고 하다니.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잠시만 진정하고 저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저자는 재일교포 2세로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경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일찍 고민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때 그에게 위안을 준 사람이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라고 말하고 있다.

소세키와 베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산 사람들이다. 그 100년 전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고민과 자신의 고민을 공감하고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들의 글과 말은 꾸준히 인용된다.

그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시대적 환경과 현재 시대적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근대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전 봉건 사회의 틀과 가치가 상실되어 가던 100여 년 전과 급격한 세계화와 초고속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혼란해 하는 현재가 중첩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대 흐름의 여울목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적이라는 뜻이다. 강물이 여울목에 이르면 물살이 거세고 빠르며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도 하여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심하면 전복되기도 한다. 현재가 마치 그런 급격하고 혼란한 시대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한다. ‘자아’에 대한 탐색은 디아스포라이며 전후 세대인 저자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고민일 수밖에 없겠지만, 물질문명과 황금만능주의 사회 속에 매몰되어 가는 우리들에게도 심각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현대는 ‘자아 상실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아에 대한 발견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반면 자아를 상실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 역시 사라지며, 타인에 대한 존재 가치까지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자살이 늘고, 이른바 ‘묻지 마 살인’이 횡행하는 원인의 큰 부분이 바로 자아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즉, 자아에 대한 고민은 ‘생존의 당위성’을 구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자아’는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오히려 타자를 인정할 때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 가능한 것이며, 진정한 자아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성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저자는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속도를 강조하고 표면적이기를 강요하는 현대에 있어서 ‘진지함’은 하나의 제어 도구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할 때 봄에 해당하는 시절이 바로 ‘청춘’이다. ‘청춘’이라고 하면 젊음, 생기발랄, 활기 등이 연상되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현실이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불안의 시절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기도 한데, 이것이야 말로 ‘청춘’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아’에 대한 탐색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로지 취직을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바치고, 배우는 것은 돈 버는 방법, 인간관계를 잘 맺는 방법이나 배우면서 청춘을 허비한다. 진지한 고민을 하는 젊은이를 보면 오히려 젊은이답지 않다는 핀잔을 준다. 현실의 산더미 속에 파묻혀 질식하는 중이면서도 그 답답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청춘을 가리켜 ‘탈색된 청춘’(p.90)이라고 하고 있다. ‘청춘’은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그 향기를 발하는 것이다. 저자는 나이를 먹어도 청춘의 향기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현대를 ‘자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를 통찰해보면 인간은 자유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듯하다. 과거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윤리, 도덕, 종교 등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서 그 도그마가 가르쳐준 대로 살면 그뿐이었고, 죽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유는 표류와 방황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일정한 좌표와 기준이 없고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며,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표류와 방황의 종말은 자신의 파괴, 즉 자살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 다시 ‘자아’를 말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게 하는 힘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내면에 깃드는 충족감, 즉 자아 또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p.150)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에 들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은 괄목할만하게 늘었다. 또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 비율이 급격하게 줄었다. 이 결과 노인 인구가 그야말로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사회 문제로까지 인식되게 되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노인은 이미 사회의 생산성 기여에서 탈락된 존재이므로 사회인이 아니고 사회적 규범에서 밀려난 열외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과거 노인 인구가 희소할 때는 노인들은 지혜와 권위의 상징으로서 존중받았지만, 지나치게 늘어난 현대에는 그 가치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뿐일까?

모든 생명체가 그렇겠지만 사람 역시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 두려움이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그 죽음이 다가오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더 이상 죽음을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p.162)이 생기게 되는데, 저자는 이 힘을 가진 사람이 바로 ‘노인’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뻔뻔해지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노인이 되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늙으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종단하고 싶다고 한다. 더불어 ‘이제는 고령자가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p.165)라고 역설한다.




이 책에서는 이 외에도 돈, 지식, 종교, 일, 사랑 등 누구에게나 곁에 있는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결론짓자면, 이 책의 요지는 ‘자아의 발견’과 ‘타인과의 관계 회복’ 이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붙여 말하면, '확고한 자아를 바탕으로 타자를 상호 인정하는 관계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제를 푸는 열쇠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인간적인’ 고민을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지요.”(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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