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아무런 이름 없는 사람이 저명한 문학 예술가의 글에 대해 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그저 바라보고 감탄하는 것만이 나의 임무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김훈의 글이라면 <칼의 노래>를 읽어본 것이 전부다. 짧으면서 분명하게 끝을 맺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그의 문체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마음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다.”(p.62)고 작가는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떤 시적 운율의 리듬을 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살짝 비트는 수동형 문장과 갑자기 꺾이고 떨어지는 어세(語勢)를 보면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 자체가 마치 추상화 같다.

 

어떤 작가는 화려한 수사를 곁들이고 어세를 부드럽게 하여 마치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카스테라 빵과 같지만, 김훈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여 마치 우리밀 빵처럼 입자가 거칠고 메마른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씹고 있으면 독특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밀빵과 같이 김훈만의 글맛을 느낄 수 있다. 유홍준 교수가 완당 김정희의 글씨를 가리켜 ‘육질이 빠지고 골기(骨氣)만 남은 고졸(古拙)한 글씨’라고 했는데, 이 표현으로 김훈의 문장 모양을 설명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회상>을 보면, 작가가 대학생 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말하고 있다. 거기에는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가 쓰여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수사 없이 오직 알맹이만 무미건조하게 쓰인 글 사이의 빈 공간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아마도 김훈의 글쓰기 법은 이 <난중일기>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함을 주장한다. 의견과 사실이 구분이 안 될 때 인간 사이의 소통에 단절이 오고, 그 단절이 사회 부조리와 악행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오직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데, ‘소통’을 담보하지 못하는 언어는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 거짓이라는 것이 주장이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고, ‘사실’과 ‘신념’을 구분해서 말하자는 작가의 주장은 현 우리 사회에 많은 사시할 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섣부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김훈은 대하소설은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쓰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글의 과묵하고 무거운 성질과 간결하고 고졸한 문체로서는 줄줄이 끌어가는 대하소설에는 맞지 않겠다는 짐작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훈의 소설은 점점 더 시(詩)를 닮아 갈 것 같다. 간결한 문장과 언어 사이에 무한한 상상력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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