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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역사 - 진실과 거짓 사이의 끝없는 공방
황밍허 지음, 이철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법정의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동서양의 법정을 시대적으로 논술하면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법원, 재판관, 검찰과 변호인, 소송 당사자 등을 제목으로 하여 글이 단속적으로 쓰여 있고, 심지어는 법복의 변천과 서양 법관들이 쓰는 가발에 대한 이야기, 법정의 실내 배치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일관된 줄거리를 찾기는 조금 힘들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저자가 중국의 현 법관인 까닭에 대체적으로 중국과 서양의 법정 문화를 비교 논술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중국에 근대적 개념의 재판과 법정이 도입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서양 열강의 침탈을 받은 후이다. 이전에 중국에서는 지방 관청이 행정과 사법을 모두 관장했고, 지방관이 재판의 법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본래 유학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정치의 특징이라면 재판, 즉 송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송사를 판결하는 것은 남과 다르지 않으나 자신은 송사 자체를 없게 하겠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인간 집단에서 다툼이 없을 수 없고 이것을 판결하는 송사가 없을 수 없다.
명청대에 이르러서 중국도 산업과 문화가 분화하고 다양화하면서 법 조문과 판례가 방대해졌지만, 오직 유학적 소양만으로 관리를 등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관리는 법문에 대해서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관리의 재판을 돕는 역할을 한 이가 형방비장이다. 형방지장은 이른바 법에 대한 전문가라 할 수 있으며 숨은 법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사법 기관이 존재하지 않은 고대 중국에서 변호사 역시 있을 리가 없다.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송사'이다. 송사들은 무지한 백성의 소송을 대신했다. 이때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으므로 이들을 보는 사회적 관점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는 서양의 변호사가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고 일반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과는 매우 대비된다. 아마도 재판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동양의 독특한 사고가 이런 인식에 한몫하지 않나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법의 독립이 완전히 보장되지 못했다. 법복만 하더라도 2000년까지 군대스타일의 견장을 찬 제복과 챙 달린 모자였다. 2000년 이후에 비로소 서양식의 법복을 입게 되었고, 법봉도 사용하게 되었다. 군대식 법복이 일종의 공권력과 상명하복을 나타낸다면 서양식의 검은 법복은 지혜와 양심, 공정과 정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배심원 제도는 매우 독특하다. 이 제도는 고대 로마법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나 초기 유형은 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 제도는 본래 여러 원로들의 경험과 지혜를 살리던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되었다. 그 대표적인 판결이 o j 심슨 재판일 것이다. 살인 혐의가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형사 재판에서 배심원 제도에 의해 무죄가 선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사 재판에서는 역시 배심원 제도에 의해서 유죄가 선고되었다. 배심원 제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회의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문화적 전통이라고 해서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상 봉건 시대에 동양의 사법 제도는 서양의 것에 비해 매우 뒤떨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이란 것이 정치, 경제, 문화의 바탕 위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고 볼 때, 상업을 기반으로 한 서양 사회와 농업을 기반을 발전한 동양 사회에서 자연히 사법 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근대적 개념의 법치문화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중국의 현실을 잘 일깨워준 영화 '귀주 이야기'를 들어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향촌을 단위로 하는 자급자족적인 농경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적 이익이 우선시 된다. 또 전통적으로 혈연 관계를 갖고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간에 평등이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와 개인간 분쟁을 상호간에 협의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는 유교적 덕목이 강제되던 것을 생각하면 서양식의 법정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음 말과 같이 동서양의 법정 문화를 비교하고 있다.
"서양 사법제도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법 독립과 변론주의, 배심원 제도, 공정한 소송 절차와 권력의 제약, 전문적인 법조인 사회 등이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사법제도는 혹형과 추궁식 심문, 유죄추정, 제약을 받지 않는 권력, 사법의 임의성과 비도덕화, 변론제도의 결여 등 서양에 비해 훨씬 비문명적이다."
여기에서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겠다. 여전히 근대화를 완결하지 못한 중국 사법 제도를 질타하고 하루빨리 서양식 근대적 법정 문화를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뒤에 있는 '심판편'에는 전국시대의 법가와 현대적 법치가 어떻게 다른지, 소크라테스 재판이 어떠했는지, 미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얽힌 재판 등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고, 2차 대전 이후 전범 재판에서 독일과 일본이 어떻게 달랐고, 이 차이가 현재에 어떻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o j 심슨의 재판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