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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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소파에 던져 묻고 있을 때도 마음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내달리고 있다. 시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빨라져서 어지러워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때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은 한 잔의 향긋한 차와 같이 바쁜 일상에서 내려서 잠시 쉬도록 만든다.

지난 6,70년대에는 흔해서 그리 하찮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것들을 사진에 담고 재밌게 이야기를 꾸미고 설명을 붙였다.




원두막을 보니 내 어렸을 적 수박과 참외를 기르던 우리 밭의 원두막이 떠올랐다. 여름 방학이면 도시에 살던 외가 사촌형이 우리 집에 와서 며칠씩 묵고 가곤 했는데, 낮에는 주로 나와 같이 원두막에서 놀고 책도 읽으면서 보냈다. 그리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놈 중에서 잘 익은 수박을 따서 끝없이 먹어댔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 당연히 나오는 것도 많은지라 수시로 원두막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싸댔다. 어떤 때는 귀찮아서 원두막 위에 서서 그냥 아래로 쌌는데, 지린내가 난다고 아버지께 혼나고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을 누가 더 여러 번 소변을 보는지 시합을 했다. 아마 내가 열대여섯 번 정도 쌌던 것 같다.




염전을 본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4,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채소를 하도 대단지로 생산하는 것이 보편화되어서 그런 일이 없지만, 당시는 작은 밭에 약간의 채소를 길러서 리어카에 싣고 시장에서 팔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느 가을 김장을 앞둔 날 어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내가 밀면서 30리 비포장도로를 갔다.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달한 곳은 염전 마을이었다. 모양이 똑 같은 슬레트 지붕의 집들이 길가에 쭉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길에는 아이들이 재랄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 때 처음 보았던 염전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똑 같이 네모로 나뉜 곳에서 아저씨들이 써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 네모 가운데에 하얗게 소금이 쌓여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지금도 중학교 동창 중에서 그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친구가 있다.




옛날 시골에서 겨울 준비에 필수적인 일이 지붕손질, 나무찌기, 김장 등이었다. 논에서 나락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으로 지붕을 다시 잇는데, 이때 마을 아저씨들이 모두 모여 일을 하였다. 70년대 들어와서 새마을 운동 바람에 초가지붕이 없어지고 대신 슬레트나 기와로 지붕을 바꾸는 바람에 그런 광경이 없어졌다.

나무찌기는 겨울에 난방에 필요한 나무를 비축하는 것을 말한다. 산에서 소나무의 아래 가지를 쳐서 묶어 가지고 와 집 마당 구석에 높이 쌓아두었다가 겨우내 빼서 불을 지폈다. 이것도 연탄보일러로 아궁이를 바꾼 뒤로는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대신 겨울이 되기 전에 연탄을 수백 장씩 사서 창고에 저장하는 일이 대신 생겼는데, 나무를 쩌내리는 일은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아이들은 산에 따라가서 덩달아 놀기만 하면 되었지만, 연탄은 아이들도 나를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없이 동참해야 했다. 그것이 싫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도 추억으로만 남았다.




이 책에 실린 사진과 글을 보면서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처음으로 괘종시계를 사오던 때와 조금 자랐을 때 아버지께서 벽에서 그 시계를 내려서 시간 보는 법을 가르쳐주시던 것이 흑백영화처럼 떠오르고, 책가방 속에서 김치 국물을 흘려 책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였던 도시락, 50원짜리 손에 쥐고 갔던 이발관 등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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