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손이 닿거나 우리의 몸을 감싸거나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의 감촉이다. 부드러운 결은 안식을 주고 세월의 결은 경외감을 유발하며, 섬세한 결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복잡한 결은 우리의 시선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결」 에서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나’와 ‘옆’, 그 사이의 영역. -「겹」 에서
동물은 평화롭고 생선은 푸르며 사람은 애처롭다. -「등」 에서
욕구가 왕성할 때 쓰는 말. 주로, 아이들이 반복해서 놀고자 조를 때, 윗사람이 반복해서 충고하고자 할 때, 연인들이 헤어지고 싶지 않을 때, 말이 말을 낳을 때, 술이 술을 부를 때. -「또」 에서
우리가 가장 믿고 사는 이것. 우리가 가장 숭배하고 사는 이것. 우리에게 가장 큰 실망을 주는 이것. 우리에게 가장 다양한 실망을 주는 이것. 우리에게 변함없이 새로운 실망을 주는 이것. 그리하여 가장 연연하는 이것. 하여, 몸은 우리에게 말한다. 몸의 언어로. 몸의 방식으로. 몸으로써.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감각’이며, 감각에 기대어 몸의 언어를 듣는 일이 ‘아픔’이며, 몸의 언어에 화답을 하는 일이 ‘통증’이며, 몸이 자신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준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회복’이다. -「몸」 에서
동지와는 사소한 이견을 좁혀나가기 위하여 논쟁을 한 이후 옹호로 귀결되어야 옳고, 벗과는 사소한 이견으로 대화를 농밀하게 만든 이후 다름에 매혹되어야 옳다. -「벗」 에서
인간의 한 생은 ‘생’일 수밖에 없다. 익지 않거나 익히지 않은, 엉뚱하고 공연한, 본디 그대로의, 지독하거나 혹독한 것일 수밖에 없는. -「생」 에서
구태의연한 사람의 선의는 악의와 다름이 없을 때가 더러 있고, 애써 구태의연하지 않으려는 선의는 위선과 닮아 보일 때가 더러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선의만이 오해 없이 누군가에게 가닿지만 쉽게 피부로 느껴지질 않아서, 오래오래 살아가며 전달할 수밖에 없다. -「선」에서
1. 이미 아름다웠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고,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이 기어이 아름다움이 되게 하는 일. 2. 성긴 말로 건져지지 않는 진실과 말로 하면 바스라져버릴 비밀들을 문장으로 건사하는 일. 3. 언어를 배반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 -「시」 에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씨」 에서
여자들은 환영받지 못한 여동생으로 태어나 여고생이 되었다가 여대생이 되고, 여급에서 여사원에서 여사장이, 여가수나 여의사나 여교사나 여교수나 여류 화가나 여류 작가로 산다. 남자들이 환영받는 남동생으로 태어나 고교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고, 사원에서 사장이, 가수나 의사나 교사나 교수나 화가나 작가로 사는 동안에. -「여」에서
사람이 있어야 할 가장 좋은 자리. 사회적으로 높거나 낮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인맥상에서 멀거나 가깝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누군가에게. -「옆」 에서
첫사랑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다. 첫째도 복수형이 될 수 없다. 첫인상도 첫만남도, 첫 삽도 첫 단추도 첫머리도 두 번은 없다. 하지만 첫눈은 무한히 반복된다. 해마다 기다리고 해마다 맞이한다. -「첫」 에서
음악에 맞추는 춤은 멋이 나고, 음악에 맞추지 않는 춤은 웃음이 나고, 음악도 없이 추는 춤은 어쩐지 눈물이 난다. 여럿이 추는 춤은 신명이 에워싸고, 둘이서 추는 춤은 사랑이 에워싸고, 혼자서 추는 춤은 우주가 에워싼다. -「춤」 에서
힘을 쓰면 도울 수 있고, 힘을 주면 강조할 수 있다. 힘을 쏟으면 정성을 들일 수 있고, 힘을 얻으면 용기를 낼 수 있다. 힘에 겨우면 좌절하게 되고, 힘에 부치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힘을 내면 회복할 수 있고, 힘이 들면 무너질 수 있다. 힘이 세면 상황을 움직일 수 있고, 힘을 기울이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힘」 에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격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든 걸 가진 자에게서보다 거의 가진 게 없는 자에게서 더 잘 목격할 수 있는 가치이고, 모든 걸 가진 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유일한 가치이고, 거의 가진 게 없는 자가 유일하게 잃기 싫은 마지막 가치이기 때문이다. -「격」 에서
그러고 싶은 것에 대하여는 이것이 무엇보다 어렵고 그러기 싫은 것에 대하여는 이것이 무엇보다 쉽다. -「늘」 에서
변해가는 모든 모습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온 유일무이한 존재. -「달」 에서
이것 없이는 이제 사랑도 하지 않는다. -「득」 에서
모든 아름다움은 모든 권위보다 더 권위 있다. 진. 선. 미 가운데서 유일하게 생존한 인간의 덕목이다. 하지만 편파적이다. 여성의 진과 선은 아름다움의 지위를 얻지 못할 때가 많든 데 반해, 남성의 진과 선은 아름다움의 지위를 손쉽게 얻는다. -「미」 에서
참말을 더 참말처럼 보이려고 지나친 애를 쓰다가 사용하게 되는 과장된 참말. -「뻥」 에서
인간의 사유와 인간의 말이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책을 통해 목격하는 행위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책」 에서
가난함은 티가 나고 부유함은 티를 낸다. -「티」 에서
폐가 될까 걱정하는 것이 사람다움이다. 폐가 폐라는 걸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폐가 된다. -「폐」 에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한다. 눈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흙」 에서
변해가는 것들에마 이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이제 시작되었다는 뜻과 아주 잠깐의 과정일 뿐임을 나타내는 말로서 기대감을 잔뜩 품을 때 사용된다. 이 기대감이 긍정적일 때는 애틋함과 설렘을 나타내는 쪽으로 작용된다. 갓 태어난 아기, 갓 피어난 꽃, 갓 구워진 빵, 갓 시작된 사랑.... 이 기대감이 부정적일 때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나타내는 쪽으로 작용된다. 갓 시작된 불행처럼. 갓 이별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엄청나게 괴롭겠지만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게 될 것까지 내포한다. -「갓」 에서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나‘와 ‘옆‘, 그 사이의 영역. 그러므로 나 자신은 결코 차지할 수 없는 장소이자, 나 이외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장소. 동료와 나는 서로 옆을 내어주는 것에 가깝고, 친구와 나는 곁을 내어준다에 가깝다. 저 사람의 친구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보는 데 옆과 곁에 관한 거리감을 느껴보면 얼마간 보탬이 된다. -「곁」 에서
처음 들어가 눕지만 영원히 눕는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혼자가 된다. 가장 차갑지만 어쩌면 따듯할지도 모르며, 가장 딱딱하지만 어쩌면 아늑할지도 모른다. -「관」 에서
물건 같은 것을 한데 묶을 때 사용하는 물건. 끈이 끊어질 때 대열은 흩어져도 물건이 단단하면 온전할 수 있다. 사람의 끈도 마찬가지 경우. -「끈」 에서
남자, 타인, 남쪽. 이 세가지를 모두 이 한 글자로 적는 데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 두고 보아야 좋다. -「남」 에서
바야흐로 진화를 거듭하여 악은 가시적인 폭력을 휘두르지 않게 되었다. 특정한 집단과 특정한 인물에게, 특수한 상황과 특수한 입장에게 귀속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악은 모두에게 알맞게 배분되어 있다. 모두가 나눠 가졌기 때문에 좀처럼 악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믿음직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볼 때도 우리가 불신 한 줌과 불안감 한 줌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친구의 얼굴이 어째서가 아니다. 선이 언젠간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것도 내 얼굴 깊은 곳에 악의 그림자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스스로의 악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기 멱살을 잡는다. 멱살을 잡히는 나와 멱살을 잡는 나의 조용한 악다구니, 하루를 하는 것 없이 지낸 날에도 이유없이 피곤이 몰려온다. -「악」 에서
‘엿같다‘라는 말과 ‘엿먹어‘라는 말은 엿을 너무 쉽게 단정짓는다. 호박엿 한 주먹을 얻으려면 호박 한 소쿠리를 삭히고 고으며 저어야 한다. -「엿」 에서
삼킨 것들이 역류할 때 나는 소리. 욱하는 건 순간이지만 욱해서 쏟아진 것들의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욱」 에서
펜이 칼보다 강할 수는 없지만 펜이 칼이 될 수는 있다. 펜을 가장한 칼이 도처에 가득하다. -「펜」 에서
구태의연한 사람의 선의는 악의와 다름이 없을 때가 더러 있고, 애써 구태의연하지 않으려는 선의는 위선과 닮아 보일 때가 더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