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아이들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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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피그말리온 효과. 기대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로젠탈 학교'에서 나타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어딘가 찝찝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돌아가지만 인위적이고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범죄자의 자녀처럼 평범하지만은 않은 아이들(소위 사회하층민)을 데려다가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려는 교장, 또는 어른들의 잘못된 기대에 불과하다.

 

 더 무서운 것은 어른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고립된 섬에 위치한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이성 교제 뿐만 아니라 동급생끼리의 대화도 엄격히 통제되어 있고, 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복용한다. 인터넷 역시 사용을 제한하고 외부 소식은 학교에서 걸러낸 정보 ― 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 만을 볼 수 있다. 이 학교에 취재온 PD 마와 촬영기사 곽은 꽁꽁 감춰졌던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 교장의 비서인 은휘는 이들에게 은밀한 도움을 주지만 결국 들켜서 모두가 위기에 처한다.

 

 마는 아이들을 구출하고 싶어했지만 결국은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교장의 말을 듣고 있으면 로젠탈 학교의 특이한 행보가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정도로 그들은 학교의 교육방침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이 올바르고 성공한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획일화된 질서가 강요되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렸다. 내 기대를 타인에게 투영하여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이상이 아니라 기대를 가장한 폭력이다. 은휘가 마에게 '여기서 달아나'라는 암호를 전달했을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더 섬뜩한 것은, 이것이 소설 속의 로젠탈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는 과거 학교 다큐멘터리 촬영에서 한 아이의 도움 요청을 자신은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요청은 정말 간절하고 긴급한 것이었고, 그 아이는 그날 학교에서의 과도한 체벌로 인해 죽고만다. 로젠탈 학교에서 세탁일을 배우는 혼모가 겪었던 일에서도 '너희들은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가르치던 학교의 모순을 읽을 수 있다. 세탁물에서 지갑이 없어지자 선생님들은 모두 과거에 도둑질 전력이 있는 혼모를 의심한다. 혼모를 진심으로 믿지 않은 것이다.

 

 로젠탈 학교의 이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지. 지금 어딘가에도 조용한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이상이 모두의 이상일 거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사정을 고려해주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나는 누군가의 피그말리온, 갈라테이아는 아닐까?

 

 책의 카피를 다시 되뇌어본다. 당신은 누구의 욕망대로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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