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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ㅣ 평화 발자국 1
권정생 지음, 이담 그림 / 보리 / 2007년 6월
평점 :
알록달록 선명하고 밝은 표지를 입은 동화책들 속에서 빛바랜듯 하고 어쩐지 아득한 <곰이와 오푼돌이 어저씨>의 겉표지는 오히려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가 턱에 손을 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그 눈빛이 너무 슬퍼보였다.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방 눈물을 왈칵 쏟아낼 듯한 그 표정... 책을 손에 쥐고 나니 권정생선생님의 책이었다. 망설임없이 책을 들고는 아주 먼 옛날 누군가의 꿈을 대신 꿔 주듯이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전쟁통에 목숨을 잃어 오래전 잠이 들었지만 눈을 뜬채 잠이 들었다.너무도 서럽게 죽어서, 잊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리라. 그래서 잠들지 못한 것이다. 고향집 뒷산의 소쩍새 소리, 맑고 시원했던 냇물, 아름답고 정다운 고향의 가족들... 그래서 죽어서도 끝내 죽지 못하고 서글프게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국군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인민군 오푼돌이 아저씨를 향해 곰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묻는다. "왜 그랬어요? 왜 서로 죽였어요?"
대답대신 소쩍새의 울음소리 '소쩍 소쩍 소쩍다'
왜?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어서까지 잠들지 못한 걸까?우리의 옛 이야기가 살아 움직여 소쩍새 대신 대답을 해준다. 호랑이 두 마리가 어머니를 잡아먹고는 오누이에게 보드라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가 진짜 엄마니 앞문을 열라고, 아니 내가 진짜 엄마니 뒷문을 열라고, 함께 꼭 부둥켜 안고 있어야 할 오누이는 누가 진짜 엄마다 아니다,라고 싸우기만 하다가 결국엔 누나는 앞문을, 동생은 뒷문을 열어준다. 곰이가 "안돼"라고 외치지만 결국 두 오누이는 호랑이들에게 물려간다. 물려가며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야기도 기울고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비춰주던 달도 어느새 기울고...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잠들지 않는 한, 잡혀간 오누이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말이다.
나는 6.25전쟁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너무도 멀리있는 그 이야기가 나와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이야기는 내게 너무 소중하다. 언젠가 다시 무서운 호랑이가 엄마라고 속이고 내게 달려들지도 모르니. 난 내 형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가 편히 잠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고, 내가 느꼈듯이 전쟁을 겪은 어른 세대들이나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까지 이 동화책으로 인해 평화의 첫 발자국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평화와 사랑의 나라에 가까워지고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