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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리 ㅣ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평점 :
보리피리 이야기 '달걀 한 개'를 재밌게 읽었다. 맛깔스런 사투리에 따뜻한 정서,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야야. 야야의 두번 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보게 되었는데, 어머나 야야가 고새 이렇게 자랐네. 달걀 부침, 달걀 찜... 달걀만 보면 침을 꿀꺽 삼키며 행복하게 먹던 야야만 생각했었는데 '산나리'에서 야야는 정말이지 마음이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뒷산 너머 산나리 꽃만 보면 너무 고와서, 갖고 싶어서 애가 타는 야야. 그 꽃을 한 포기라도 뽑아 장독대 옆에 심으려고 친구들과 뒷산에 오르지만, 하필이면 거기는 죽은 아가들을 묻는 애장골.
아이들에게도 죽음은 낯설고 무서운 것이겠지.동무들과 용기내어 올라간 애장골에서 잔뜩 겁만먹고 산나리 꽃이고 뭐고 마을로 내달리는 아이들, 그리고 애장골 귀신 이야기를 하며 얼굴이 새파래진 야야에게 죽은 아가들의 혼과 그 부모의 한을 이야기하는 엄마. 우리의 삶 가까이에 너무도 가까이 있는 죽음, 그렇지만 그 죽음을 받아들일 때는 누구나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산나리 꽃을 갖고 싶던 야야는 옆 마을 동무가 죽어 애장골에 묻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은 산나리를 꺾을 수 없게 된다. 애장골에 무더기 피어있는 산나리가 죽은 얼라들과 자기 동무의 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걸까.
작가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그런지 소설처럼 잘짜여진 구조속에 긴장감이나 반전같은 재미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때묻지 않은 진심과 사람내음이 느껴진다. 그것이 살아온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에게 죽음을 전해줄 때는 흔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과장된 슬픔을 보여주거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숨기며 삶의 기쁨을 전해주는 게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방식인데, 산나리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죽음의 이야기를 바로 자신의 곁 동무의 죽음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 내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서 마지막 장면을 보게 되면 바로 내가 알고있던 동무가 죽은 듯 마음이 짠해지고 애잔해 진다. 무엇보다 천방지축 야야가 자라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것도 즐겁다. 기쁨과 슬픔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나야 건강한 것 처럼, 조금은 슬프고 아릿하지만 아이들의 삶속에 있는 '죽음'을 이야기한 산나리. 아이들이 산나리를 곁에두고 기쁘고 아프면서 그렇게 조금씩 자라났으면 좋겠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너무 좋다, 란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너무도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그려냈다.
나도 어느 날 지나치다가 '산나리'를 보게 된 다면 무심코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떠난 내 동무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