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동녘문예 6
김산 지음, 조우화 옮김 / 동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말미암은 무사계급의 불만을 우리나라 쪽으로 돌리고,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각종 이권을 얻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지만,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수난을 의미했다. 그러나 갈수록 일본의 수탈이 심해지고, 국민들은 부패와 세력다툼으로 무능해진 정부에 의지할 순 없었다. 결국 일본의 탄압에 도망치기 위해, 혹은 저항하기 위해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이주하였다. 투쟁을 위해 조국을 떠난 이들 중엔 운좋게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위인으로서 존경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단 격동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다가 죽고 잊혀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김산’은 우리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역사의 흐름속에 묻힌 인물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았다는 점에서, 그 신념이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안위를 염려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있는 삶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집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내가 집에 앉아 사소한 일로 동생과 싸우고 간식거리로 고민하던 나이에 그는 동경과 만주,상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에 대해 고민하고 싸웠다. 조선이란 나라는 그에게 젊음을 느낄 여유를 주기엔 너무 열악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구체제와 자기도태 등의 내부적 문제점과 일제강점하라는 외부적인 문제점들은 일찌감치 그를 조국에서 내몰았다. 11살에 가출을 하고, 14~15세때 무정부주의자가 된다. 15세의 나이에 혁명운동에 참여하길 원하며 결혼을 거부하는 이에게 나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를 보면 나이가 적고 많음이 어리고 성숙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사람에 영향을 미쳐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상에서    “내 나이가 몇 살인데...”라는 말을 쉽게 한다는 것이 스스로 사회의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살고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내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게 된다. 무의식중에 ‘나이’라는 것으로 내 행동에 쓸데없는 제제를 가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면 그간의 삶에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한편 그는 중국과 일본에 체포되면서 고문을 받기도 하고, 다른 이로부터 모함을 받아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주변사람에게 쏟아붓는 나와 대조되는 모습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됨에도 상대방을 용서한다는 것-내적 성숙을 바탕으로한 이성의 승리다. 아직도 옹졸하게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며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우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게된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이의 고발에 의해 잡혀 들어갔으면서도 자신은 심한 고문 앞에서도 동료의 이름을 대지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른다는 것은 나로선 자신없는 일이다. 난 극한의 상황에서까지 내 신념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왠지 다른 사람도 다 변절한다면 그들에게 배반감을 느끼다가도 다수의 행동에 묻혀 내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결국 똑같이 될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스스로 정한 길을 홀로 걸어가는 굳은 신념이 아직 내게 갖춰지지 않은 듯 하여 씁쓸하다.

그에비해 ‘김산’은 어릴때 무정부주의에 빠졌다가 ‘김충창’에게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신념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트로츠키 주의자로 몰려 죽음을 당한다. 살아있었더라도 현실에 세워진 공산주의는 그가 꿈꾸던 것과는 달랐을테고, 현실에 맞지 않음으로 인한 공산주의 사회의 몰락은 오히려 좌절감을 맛보게 했을지도 모른다. 당대의 지식인들 대다수가 공산주의를 꿈꾸었고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위해 싸웠다고는 하지만 ‘김산’ 또한 그 허망한 이상에 젖어 희생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애석하다. 공산주의의 이론이 말 그대로 이론에 불과한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현실이 너무 암울했기에 더욱 이상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정확하고 공정한 이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제시한 세계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간과했다는 것을 알지못한 것이 그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이 사회의 변혁을 꾀하는 혁명가로서 손색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단순한 이상주의자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가 공산주의 혁명에 쏟은 열정이 중국의 공산주의에 치중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갈망해왔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활동도 하였었다. 그러나 그의 주요 행적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속에서 더 빛난다. 중국대혁명 참가나 여러 중국인과 어울리며 공산주의를 위해 하는 행동들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투쟁보다 더 열성적인 것 같다. 물론 그가 원하는 것은 각 나라들의 공산주의자들의 연계와 통합이였을지라도 아직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조국의 독립이 더 우선되어야 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중국인 공산주의자들과 국민당에 대항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우리나라의 다른 사람들, 단체들과 협력하여 일본에 먼저 대항했어야 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조국이 없다면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가 궁극적으로 해방된 조국의 공산주의화를 바랬다면 그는 일의 순서를 잘못 정했다고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싸울 수는 없다.

‘김산’은 조국강토의 식민화라는 현실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모색하던 지식인이자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혁명가였다. 그의 이상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물려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만이 아닌 다음세대까지 염려한 숭고한 죽음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리랑은 그의 삶이고 우리의 삶이다. 아리랑의 여러 가지 곡조와 가사가 우리의 정서를 담아 다음 세대로 이어지듯이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자연스레 전해지듯 우리 또한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할 일은 없는지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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