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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신라
김기흥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들은 국사 수업에서의 신라는 그 문화보단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있던 삼국을 통일한 나라로서 더 중요하게 다뤄졌었다. 그래서 내가 신라를 떠올릴 땐 자연스레 삼국 통일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조금 더 생각하면 선덕여왕, 경주, 첨성대 등도 떠올리겠지만 이런 몇 개의 고유명사를 기억한다고 하여 신라라는 나라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존재했던 나라에 대해서 아는것이 고작 몇 명의 왕과 유적 몇 개라면 이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게 살았던가를 말해줄 뿐이다. 내가 아는 신라는 몇 개의 시험용 지식으로 토막난채 잊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천년의 왕국 신라’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신라가 천년동안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신라를 배워오면서 유구한 시간의 흐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온 이후 삼국을 통일하고, 부패한 귀족들의 왕위다툼에 스러지기까지 가만히 따져보면 그 역사의 흐름이 꽤 길다는 것을 금방 알 수있다. 그러나 난 그조차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신라가 천년의 왕국이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일 없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 혹은 어릴 때 읽었던 학습용 역사만화에서 본 지식만을 단순하게 습득하고 있던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알고있던 역사의 다른 면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석탈해와 유리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며 떡을 깨물어 왕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단순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떡을 깨문다는 행위에서 옛사람들이 이빨의 많고 적음으로 연장자를 가렸었다는 일종의 미신적 요소가 담겨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왕위를 양보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지만 사실은 둘이 왕위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고하며 그에 대한 배경과 역사적 자료 등을 제시함에 따라 흔히 알고있는 얘길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잘몰랐던 신라의 포용정책도 인상깊었다. 고구려의 영토를 뺏은 후 그 지역 거주민이 신라의 성을 쌓는 일에 동원되어 일하다가 죽자 처자와 형제에게 후하게 포상하여 거주민들을 신라인으로 동화시키려는 노력하였다. 단순한 정복욕으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나라의 성장과 통합을 추구하는 노력이었다는 것이 대단했다. 이미 그 때에도 한민족으로서의 자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21세기라고 하는 지금에도 여성으로 태어나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몇천년 전에 왕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여성, 선덕여왕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난 처음에는 막연히 신라시대에는 유교윤리가 들어오기 전이여서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나보다라고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석가모니의 탄생을 바란 진평왕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실망을 안겨주었다. 성골이라는 혈통적 정당성이 있었지만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왕의 자리에 힘겹게 올랐고, 여자가 왕이 될 수 없다는 반란군들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죽었다. 이는 여성 장관이나 국무총리에 많은 반발이 있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속에서 절과 탑의 건축으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현명하게 처신했던 선덕여왕은 현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나라를 통치함에 모자람이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긍지가 있었고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여성 장관이나 국무총리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책임을 지닌 여성들은 주변의 시선에 지레 질려 포기하기보단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천년의 왕국 신라’를 읽으면서 모르던 것들은 새로 배우는 기회가, 알고있던 것은 다시 생각해보고 다양한 해석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신라의 고대와 중대 부분만이 다뤄져 하대는 아직도 잘 알지못한채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나의 무지함에 대해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알수있을리 없으니 결국 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살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담감은 내가 생존할 뿐 삶을 누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에서 오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