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속살 - 동시대인 총서 9
임지현 지음 / 삼인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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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조회시간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늘 조회의 첫순서로 자리매김되어있는 ‘국민의례’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에 충성을 받칠 것을 매주 다짐하는 행위는 12년간 걸쳐 이루어지기에 그 내용은 다들 줄줄 욀 수 있다. 일종의 세뇌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중에 행해진 것에 의문을 품기는 힘들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연스레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가에 충성을 맹세해야한다는 것에 생각해본 적 있을까? 분명 국가는 국민의 집합체로서 동등한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가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국민의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국가에서 정확히는 힘있는 자들이 국민의 손쉬운 통제를 위해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라는 권력의 희생자로서 파시즘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우리가 이러한 파시즘의 희생자가 아닌 공범자임을 말하고 있다. 국민 또한 이러한 파시즘적 권력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서 보여지는 파시즘의 위험성을 말하고 그것을 타파할 것을 주장한다. 미국 백인들의 완강한 인종차별주의, 홀로코스트에 거리낌없이 가담한 독일 노동자. 무솔리니를 지지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파시즘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좋은 예이다. 일반 시민들이 관성과 전통에 얽매여 자신에게 있는 파시즘적 성향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군부적 독재나 억압보다 그 잠재적인 위험이 훨씬 높다. 한편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파시즘적 요소가 우리 삶에 녹아 있다. 지식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학생과 교수들 사이에 있는 철저한 선후배 관계와 파벌주의, 대선이나 총선에서 같은 지역 출신을 밀어주는 행위, 기성 세대에 강한 반발을 표시하면서도 형님, 아우를 말하는 젊은 층 등은 이미 파시즘에 젖어있는 것이다. 난 지난 2002년 월드컵을 보면서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민족주의를 느꼈다. 축구 경기가 진행될 때의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냄비근성이라 비판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였던 파시즘적 요소일 것이다. 북한 체제가 국민들에게 조국과 민족을 강요하면서 각종 행사를 벌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우린 그들의 모습에 동정한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위험성까지 언급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월드컵 때 보여준 국민들의 움직임은 이미 북한의 그것을 넘어선 것으로 자발적으로 있었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이는 국가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이와같은 일사분란함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국가라는 이름 하에 뭉친 것으로써 타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배타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이 있었을 때 미국의 패권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 반미주의 성향을 드러낸 것은 이러한 민족주의의 일환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나치즘이나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처럼 극단적으로 흐를 소지를 지니고 있어 위험하다. 한편 이 책은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파시즘적 성향은 분명 인식하기 힘들면서도 많은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언급된 것 중에 일본의 일장기와 우리나라의 태극기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일장기를 제국주의의 산물로 보고 타파해야 할 것으로 여기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태극기에는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둘다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보고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다. 일장기는 하얀 바탕에 가운데 붉은 원이 그려져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그들의 시조신(태양신)에서 유래하여 천황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14세기 때 붉은 원이 일반화됨과 동시에 권위의 상징으로 전해진 것이다. 또한 일본이 제국주의 사업이 한창일 때 사용하던 욱일기는 여전히 해군에서 사용되고 있다. (일장기는 이러한 욱일기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권위와 제국주의의 산물과 태극기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다. 태극기는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우주의 원리를 나타내는 사괘를 가지고 있다. 국기로서 담고있는 의미가 충분한 것이다. 제국주의적 파시즘의 산물과 같게 여기고 무조건적인 타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 일장기에 반대하는 것은 일장기가 담고있는 군국주의적 요소를 없애려는 것이다. 단순한 국가주의 반대 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그 의미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보기에도 억지가 있는 것이다. 모든 국기를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볼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라면 전 세계의 국기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사회를 너무 파시즘으로만 보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적인 파시즘을 말하고 우리가 이런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분명 우리는 여전히 민족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고 철저한 수직구조의 체제의 파시즘도 보편화되어있다. 국가의 지배체제 뿐만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자각과 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시즘을 국민 탓으로만 보기 힘들 것이다. 일본 침략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은 이본에 대항하기위해 뭉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또한 이승만 이후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이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으로 파시즘을 내면화 한 것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독재 권력들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서 파시즘적 요소를 더욱 활성화 시켰다. 분명 우리에게 파시즘이 내면화되어있어 위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원인조차 국민에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있기까지의 역사적 맥락과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 원인부터 제대로 알아야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 파시즘의 몰락은 우리나라가 과거 일본 강점기와 독재 체제에서 남겨진 관습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안의 파시즘을 언급함으로써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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