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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전지현씨가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영화가 촬영 장면과 함께 기사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달린 댓글 중에 ‘전지현이 뭐가 이쁘냐. 머릿결 빼면 암것두 아닌데’라는 [여자로 추정되는 분의] 코멘트가 보였는데요. 찰랑찰랑한 여자의 생머리에 남자들이 얼마나 환장하는지 모르는 소치이죠. 여자의 머릿결을 보면 나이와 건강 상태가 정확히 보인다고 하더군요. 이 책에서는 서양인의 관점으로 금발 여인을 최고로 쳤는데, 한국은 당연히 까만 생머리 여인이 최고죠. 펄 벅은 Living Reed에서 한국 여인의 생머리를 이렇게 묘사했죠. ‘일본여자처럼 칠흑같이 새까맣지는 않고, 갈색이 약간 섞인 고운 머릿결’ 여자분들은 염색하고 지지고 볶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곱게 기르시고 머릿결 관리만 잘 해 주시면 그게 남자들이 최고 좋아하는 머리에요.
인간의 모든 문화, 문명은 남자가 여자를 꼬셔서 자기 유전자를 남기려는 발버둥에서 생겨났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여자가 튕기는 건 된장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 과정이 몇[십] 분의 섹스로 끝이지만, 여자는 아기를 열 달 내내 뱃속에 키우고 진통을 겪으며 낳아야 하고 키워야 하니, 남자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만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지요. 여자가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며 고르고 고르지 않는다면, 남자는 허구헌날 여자랑 그것만 하려 들 거랍니다. 여자가 자기 몸에 씨만 심고 튈 남자를 솎아내고 자기랑 아기랑 끝까지 책임질 남자를 골라내려는 진화상의 전략이라는 거죠.
그러니, 된장녀가 어쩌네 한국여자는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네 군대를 보내야 하네 운운하는 열폭은 엔간히들 하시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를 하든지, 먹튀 연애기술을 연마하든지 둘 중 하나를 파고드는 게 훨씬 건설적이겠지요.
그래도 남자들이 항변할 거리가 아주 없진 않지요. 다른 놈 씨를 제 새끼로 속이는 여자한테 걸려 오쟁이를 기꺼이 질 남자는 성인군자 아니면 바보겠지요. 유전자 검사가 나오기 전부터 남자는 오쟁이를 지지 않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개발했다는군요. 요즘도 출생의 비밀을 품은 드라마가 줄기차게 나오고 있죠. 생태적으로 불안한 수컷의 처지를 극화해서 팔아먹는 건 요즘의 막장드라마뿐만이 아니지요.
도덕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그득한데, 대개 딱딱 맞아 떨어지네요. 특히 여자를 구타하는 남자, 포르노그래피, 강간 등 부정적인 면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다’고 해서 ‘아무나 강간해도 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지만, 그래도 충격적이긴 합니다. 과학자의 기본적인 자세가 사실과 당위를 구별하는 것이지요. 그런 태도만 배워도 이 책에서 건질 건 다 건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