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평점 :
메이지유신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신선조'라 일컫는 막부파 사무라이들은 시대를 거스른, 변화를 읽지 못한 위인들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덮기엔 그 피냄새가 너무 강한 그들 중 한 사람,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타 이인부치의 말단 무사. 문무를 겸비했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굶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내다.
책은 탈번한 주인공이 죽어가며 떠올리는 독백과 수십년후 그를 쫓는 신문기자의 취재로 얽혀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온전히 드러난다. 증언의 호흡이 꽤나 길고 2권이후부턴 퍼즐 맞추기가 거의 끝나가는 바람에 어느정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퍼즐이 얼추 맞춰지고부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탓에 흐름이 느려지기도 하지만.
'사무라이는 대의를 위하여 죽는게 아니라, 처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죽는다.'는 게 책의 요지. 무릇 사내라면 아비라면 인간이라면, 제가족을 지켜내는 게 제일의 책무라는 것. 그 시대에선 너무 앞서 있었고 우리시대엔 변질된 듯한 그런 가치를 책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세대가 있었고 지금은 모두다가 그런 이유를 달고 살아가지 않나 싶지만, 좀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誠, 그 자체다. 가난했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았고 목숨을 내맡길 사랑을 지켰고 죽음을 동무할 우정을 가졌다. 서른 다섯의 짧은 생이지만 사내로서 이만한 삶은 흔치 않을 것 같다. 그 절절한 울림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큰아들 가이치로는 아비의 저승길을 따라나서고 딸 미쓰는 남을 돕는 삶을 산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막내, 간이치로는 한맺힌 가난을 풀 지식을 가지고 마침내 귀향한다.
부모자식 간의 슬픈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돼버린 요즘이지만, 가슴이 먹먹한 것은 어쩔수 없다. 아비란 어려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삶이란 한순간도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