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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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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건, 재즈인지 모를 선율은 느껴지지만 히드나 크리스틴이 흑인이라는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모두 흑인인 영화는 '뿌리' 외엔 기억이 없어서일까. 토니 모리슨이 줄기차게 써댔다한들, 여전히 유색인종인 나도 흑인의 세계는 낯설어서일까.

무슨 수상작가 딱지(노벨상은 더욱더)가 붙은 책은 읽기가 더 망설여지는 습성에, 내가 처음 읽은 토니 모리슨의 책은 가장 최근작이 되었다. 러브. 표지가 정말 딱이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야기를 감추고 독자를 유혹하기론 말이다. 명쾌하게 이해되는 구절이 많지 않은, 화자와 시점이 작가 마음대로인, 지적유희와는 관련없는 소설이다.  현대적인 소설답게 악한 자와 선한 자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갈등의 축이 단선적이지도 않다. 인종적인 문제는 소설을 끄는 거대한 줄기임엔 틀림없지만, 그안에 또아리 튼 인간의 음모와 배신이 더 두드러진다. 한 남자의, 성공한 흑인의 권력을 사랑하고 그에 빌붙기 위해 서로를 찢고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삶은,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삶으로도 읽힌다. 물론 배부른 소리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 느긋할 인간은 없으니. 빌 코지는 그 모든 것의 원인이면서도, 마치 권력자의 오만함이 그러하듯이 자신만 쏙 빠진 셈이고.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건 한 순간. 헤쳐나오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모리슨의 출세작 '빌러비드'를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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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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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신선조'라 일컫는 막부파 사무라이들은 시대를 거스른, 변화를 읽지 못한 위인들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덮기엔 그 피냄새가 너무 강한 그들 중 한 사람,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타 이인부치의 말단 무사. 문무를 겸비했으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굶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내다.

책은 탈번한 주인공이 죽어가며 떠올리는 독백과 수십년후 그를 쫓는 신문기자의 취재로 얽혀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온전히 드러난다. 증언의 호흡이 꽤나 길고 2권이후부턴 퍼즐 맞추기가 거의 끝나가는 바람에 어느정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퍼즐이 얼추 맞춰지고부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탓에 흐름이 느려지기도 하지만.

'사무라이는 대의를 위하여 죽는게 아니라, 처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죽는다.'는 게 책의 요지. 무릇 사내라면 아비라면 인간이라면, 제가족을 지켜내는 게 제일의 책무라는 것. 그 시대에선 너무 앞서 있었고 우리시대엔 변질된 듯한 그런 가치를 책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세대가 있었고 지금은 모두다가 그런 이유를 달고 살아가지 않나 싶지만, 좀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誠, 그 자체다. 가난했지만 그에 굴복하지 않았고 목숨을 내맡길 사랑을 지켰고 죽음을 동무할 우정을 가졌다. 서른 다섯의 짧은 생이지만 사내로서 이만한 삶은 흔치 않을 것 같다. 그 절절한 울림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큰아들 가이치로는 아비의 저승길을 따라나서고 딸 미쓰는 남을 돕는 삶을 산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막내, 간이치로는 한맺힌 가난을 풀 지식을 가지고 마침내 귀향한다.

부모자식 간의 슬픈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돼버린 요즘이지만, 가슴이 먹먹한 것은 어쩔수 없다. 아비란 어려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삶이란 한순간도 가벼이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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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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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칸딘스키...또..."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러시아 화가는 다섯손가락도 채워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 몇몇도 민족적인 색채는 좀 덜한 작가들이 아니던가 싶고.

그래서 책이 재밌었다.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이야기가 흐르는 러시아 미술은 '동토의 왕국'이 가진 예술의 자양분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또한번 깨닫게 해주었으니.

트레티야코프와 러시아미술관 소장품을 주제별로 나눈 3분의 2가량은 정말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그 의례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이 민족의 미의식은 독특했다. 진정성이 흐르는 이콘화, 황실의 비극성이 처절한 역사화... 그림안에 넘쳐흐르는 서사를 주워담기에도 바빴다고 할까. 그리고 '일랴 레핀'을 비롯해 뛰어난 러시아 화가들을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다만 에르미타슈와 푸시킨박물관 소장품들은 겉핥기에 그친 듯해 무척 아쉬웠다. 저자의 말대로 2권으로 나눠 실었다면 좀 더 그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긴 러시아미술이 아닌 서유럽의 명화들은 솔직히 눈의 신선함이 적었으니 양을 늘렸다해도 별 소용이 없었을지도.

추운 겨울, 창문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내려앉는 눈의 느낌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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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공장 - 기자와 뉴스 이데올로기
플로랑스 오브나스.미겔 베나사야그 지음, 류재화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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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기자들이 하나도 안 왔어요" 투사기가 없으면 불행도 그 의미를 잃는다.
-45쪽

옛날에는 관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사람 수를 셌는데, 요즘에는 카메라 수를 세는 것으로 고통이 측정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런 역동성이 결국에는 우리 시대의 진짜 주관성을 창조해내기에 이르렀다. 현대 동시대인들에게 사후의 삶을 명하는 데 가시성에 대한 약속 말고 다른 확실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46쪽

다수란 수가 더 많으냐가 아니라 지배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소수'라는 단어는 부정적이고 복종적인 의미를 담은 모델에 상응하는 셈이다. 가령 남미에서 '다수'라고 하면 금발에 키가 크고 부자인 백인들을 가리킨다. 인구 통계적인 다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51쪽

법칙은 아주 간단하다. 언론은 대중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대중은 언론이 말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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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 - 나의 그림책 이야기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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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태어났으면 우리나이로 70살이 넘나? 저명한 그림책 작가인 이 할아버지는 많이 별난 듯하다. '나의 그림책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 두께 하는데 비해, 심각하게 읽어야 할 글은 거의 없다.

어린시절부터 순서대로 사진과 그림들이 흐른다. 중간이후부터,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그림책으로 명성을 쌓아갈 무렵부턴 대부분 익숙한 그림책 삽화들이다.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버닝햄의 그림책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인지 들춰보는 내내 흥미로웠지만. 그리고 각종 포스터, 띠벽지 그림들도 매력적이다. 좀 떼다가 두고 봤으면 싶게.(비싼 책이므로 마음만 그렇다는 거다)

버닝햄의 그림책은 마냥 착하지 않아서 유명해진 것 같다. 즉, 현대적이다. 권선징악이나 뻔한 스토리가 아닌 주변에 대한 독특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이 그의 장기랄까. 하긴 살아온 이력이 남다르니. 이동식 트레일러서 살면서, 아무 곳이나 내려서 학교에 다니다가 말다가... 이런 어린시절은 비범한 인재의 백그라운드. 서머힐과 미술학교를 빼면 버닝햄은 학교와 아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부럽다. 한국에서라면 시달림을 많이 받았을텐데. 어쨌든 창의력 교육, 따로 받을 일은 없었다는 거다.

짧은 글들 속에서 몇 번 웃었다. 좀 어이없는 유머랄까. 툭툭 내뱉는 버닝햄의 솔직함이 맘에 든다. "구성이 단순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이 할아버지, 어설퍼 보여도 사실은 선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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