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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평점 :
계약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계약을 성사하게 되는 사람들의 지위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이기 마련이다. 이런 계약은 높은 사람의 이익을 향해 가게 되고, 계약이 이뤄지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고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자" 제목과 표지를 보자마자 음산한 분위기부터 받았다. 무얼 의미하는지 느낌은 자세히 오지 않았지만 왠지 이 책의 분위기와 전개를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알음과 소희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이런 소희에게 짝사랑하는 남자인 신율이 나타나게 되어서 소희는 알음에게 빈집에 가서 계약을 하자고 부탁을 한다.
'빈집은 빈집답게 대문부터 을씨년스러웠다. 꼭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외딴 곳에 있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낡았으며, 이상하게 한기가 들어 추웠다. 소희는 의식을 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적합한 집은 없다고 했다. …… (중략) 소희 말처럼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의식의 조건과 맞아떨어진다.' (본문 7p 중에서)
이런 분위기의 빈집이라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소희와 함께 들어선 빈집. 계약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소희가 한 계약과는 다르게 계약자는 그 옆에 서있었던 알음이에게 찾아오게 된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뤄진다는 빈집에서의 계약. 알음이에게는 짝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던 소희를 넘어서는 더 간절하고 애절한 계약의 조건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마다 정말 나의 어떤 하나를 포기하거나 무언가를 담보로 해서라도 이뤄내야할 소원이 있을 것이다. 알음이도 무의식중에 어떤 한 사건을 마음속에 늘 켕겨두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위험에 처하거나 정말 힘들고 고난에 빠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알음의 아빠. 그런 아빠가 정말 좋아보일지는 몰라도 알음은 어느날 아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한 어려운 여자의 아들을 집에 데려오게 된다. 이 아이, 다움이라는 아이가 알음이네 집에 고요한 물가에 던져진 커다란 바윗돌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이것은 알음이가 느끼는 다움이에 대한 생각이다. 아빠도 다움이에게 빠지고, 자신을 아껴주던 할머니도 다움이에게 홀랑 빠져서 자신을 못된 아이로 보고, 엄마는 집을 나가게 되고. 이런 다움이를 정말 죽일듯이 미워했을 지 모른다. 그래서 그 계약을 했을 당시 귀신, 계약자는 알음이에게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 계약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계약자는 어떤 알 수 없는 존재도,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존재도 아니다. 자신의 끝없는 분노가 치닫고, 알 수 없는 충동심에 휩싸였을 때, 그 계약자는 자신이 증오하는 존재로 계속 변화하여 나타나지만 자신의 증오가 만들어낸 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못되고 잘못한 사람은 없다. 누가 잘못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간의 관계도 악화시키고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내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게 될 것 같다. 알음이가 비단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알음이처럼 그 증오에 너무 휩싸이게 되면 진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