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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책방 이야기 - 모험과 사랑, 그리고 책으로 엮은 삶의 기록
루스 쇼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세상 끝 책방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 에세이에서 이런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곧바로 이 책을 다른 사람들도 읽을 생각에 설렘이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나름 많은 이야기를 접해 본 나도 이렇게 충격의 연속이었는데, 다른 이들은 이 말도 안 되게 경이로운 에세이를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그녀의 삶은 혼란, 그 자체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사고가 계속해서 그녀를 덮치고,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이 새겨진 장소를 떠나고 이를 잊을 수 있는 다른 혼돈 속으로 몸을 던진다. 도피, 그녀의 일생은 도피의 연결고리다.
어린 시절 즐거운 시간 속에서 날벼락처럼 닥친 재앙과 같은 사건. 그 견디기조차 불가능한 상처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작된 그녀의 방랑 생활 이야기는 여느 소설들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여러 책의 소개 글들을 보면 죄다 놀랍고, 충격적이고, 경이롭다는 문구들이 기본처럼 깔려있는데 '경이롭다'는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 같은 에세이다.
그녀가 평탄한 삶에서 벗어나게 만 사건에서 몸과 영혼에 새겨진 기억에서 살아남고 싶어 택한 해군 생활도 잘 적응하나 싶다가 치이고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싶은 의문에 어려운 과정을 넘어 전역에 성공한다. 이후 다음으로 정착한 스튜어트섬의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이후에 만난 남자. 그와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결혼식이 코앞에 있었지만, 그녀가 몸담은 가톨릭의 교리에 따라 그의 자녀도 가톨릭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파혼에 다다른다.
삶이 안정될 수 있을 거라 여기던 지점에서 엎어지자 다시금 좌절을 겪은 그녀는 또다시 '브리즈번' 지역으로 옮겨가 자리를 잡는다. 이곳에서 만난 두 번째 남자와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이번에는 결혼식과 자녀까지 탄생한다.
아마 소설이라도 여기서 다시 그녀를 망친다면 작가는 뒷감당할 수 없을 텐데, 그녀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나락으로, 더욱 깊이 떨어져 내린다. 남편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후 태어난 그녀의 아들마저 태아에게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세상의 빛을 본 지 13시간 만에 죽게 된다. 남편의 부모는 그녀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들이 결혼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까지. 이 이후로도 그녀는 이 세상이 괴롭히겠다 작정한 듯 끔찍한 시련들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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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관한 한 나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겐 정착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만지면 그 모든 게 다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고 앞으로 더 큰 고통이 어김없이 닥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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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라면 그녀가 마주한 일 중 한 가지 사건만 닥치더라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 좌절감이 휩쓸 것이란 걸 알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경이로운 회복 탄력성이 이 험난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사건들을 헤쳐나가고 지금의 책방에서 그녀의 가족, 이웃들과 따스한 삶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생각이 남는다.
아마 이 이야기 앞에서는 누구도 힘든 삶을 살았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테지만, "그러니까 너는 그 정도 고통에 앓는 소리 하면 안 된다." 따위의 공감이 결여된 꼰대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에세이 [세상 끝 책방 이야기]는 그런 사람에게 풍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닻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니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