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우연 지음 / 짓다(출판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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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설명의 '미학을 전공하는 작가' 수식어가 정말 잘 느껴지는 글이다. 마치 시처럼 짜여진 단어들이 소설을 떄론 모호하고 몽환적으로, 때론 강렬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내가 쓰는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를 뒷받침할 설명과 더 인상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최소한의 살만 덧붙여 직관적이고 확실히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이 소설은 그의 정 반대편에 있는 글이었다. 주제 자체가 무엇인지, 때론 이 대명사가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단어의 파도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한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제서야 퍼즐이 짜맞춰지면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 속 표현 방식들도 인상적이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표현들을 그런 울타리따위는 전혀 걸릴게 아니라는 듯, 애초부터 그런 제약은 없었다는 듯이 자유로이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나와는 달리 금기들을 외치는 모습을 보며 드는 자연스러운 거부감과 왠지 모를 해방감이 동시에 덮친다. 이는 처음으로 동물을 해부할 때의 그 불쾌하지만 신기한 감각을 묘하게 닮아있었기에 소설에선 인간의 속에 들어있는 추악한 것들을 거침없이 해부해 끄집어내어 무엇이 들어있는지 낱낱이 보여주는게 아니었나 싶다.
책에 담겨 있는 소설들을 한편 한편이 저마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토해내는 비명, 절규처럼 느껴졌다. 생소한 주제들과 그를 통해 표현되는 글은 마치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멍하니 둘러보다 어느 추상적인 작품 하나에 꽂혀 발걸음을 멈추는 때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체 어떤 것들을 담고 있길래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엇을 삼켰기에 이걸 토해낼 수 있는 것일까.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표현'에 집중하는 시가 익숙한 불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일 것이란 확신이 들며 혼돈과 같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책이 되어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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