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외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새에 대해서 한번도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아침 어린이집 등원길에 딸이 보도블럭 사이 먹잇감을 쪼는 비둘기나 하늘 위로 날아가는 까치를 만날 때면, 신이나서 “엄마, 짹짹이~” 하면서 말을 걸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응, 그래 짹짹이한테 인사해~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 바쁜 등원길을 재촉하거나, 딸이 따라가는걸 보고 날라가는 새들한테 새들도 이제 교실로 들어간다고 잘가라고 다급하게 주위를 환기시키고 가던 등원길을 마무리해야 했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등원을 시켜야 하는 과정에 불쑥 날라온 새들이 밉기도 하였지만, 등원하지 않겠다고 떼쓰는 날이면 ‘저 앞에 짹짹이들이 있나 가보자’ 하면서 또 달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딸이 종종 나타나는 새들을 반가워하는 모습에, 팍팍한 도시의 삶에서 가끔 등장하는 새들이 반갑기도 하고, 어쩌다 도로 한복판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짠하기도 하다. 이 새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근로자의 삶과는 또 다른 자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이라니.



“조용히,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새들의 자연스러움, 가벼움 속에서 그들이 가진 철학을 발견했다.”



이 책은 새들을 연구한 조류학자 필리프 뒤부아가 철학자인 엘리즈 루소와 함께 작업한 책이다. 조류학자답게 새들에 대한 다양한 습성들이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습성들은 단순히 동물적인 감각이 아닌, ‘새’라는 집단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적 본능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적 본능 속에서 인생사에서 가끔 잊고 지내거나 간과하고 있었던 삶의 지혜들을 꺼내든다.

이 책은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도출된 총 22장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털갈이를 이겨내는 오리에서는 재생을 위한 소멸의 시간을, 본능적인 방향감각으로 몇천킬로의 긴 거리를 찾아가는 큰되부리도요새는 삶의 방향을, 극락조는 잠재된 창의성을 상기시켜준다. 프랑스 작가답게, 거위, 멧비둘기, 바위종다리, 독수리, 펭귄과 오리를 통해 사랑하는 법과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인간의 삶 속에서 짚어준다.



“새들의 삶은 정확하게 빈틈없이 짜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습관들은 관습적으로 굳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을 따른 하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같은 것이다”



“새에게는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고뇌 같은 건 내던진 채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아간다……우리가 아는 진실은 하나다. 새는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새는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이다. 걱정하지 않을 줄 아는 것, 여기서 행복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조용히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되 때로는 잠재된 창의성을, 호기심을 가지고 행복을 경험하는 새들을 통해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일까? 22장의 소주제에서 새들이 보여주고 있는 삶의 메시지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행복에 관한 새들의 철학이다.

자유를 찾는 파랑새 이미지 때문인지 책을 구성하는 파란색, 흰색, 검정색의 조화가 새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또 한 손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책이라 시집을 읽는 기분도 든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새들이 조마조마한 행동들을 한다 하더라도 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각 장의 마무리에서 언급된 인생철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새와 같은 마음으로 훌쩍 떠나버릴 여름휴가를 기대하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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