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소요 - 천리포수목원의 사계
이동협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타샤의 정원이 떠오른다. 타샤튜더의 정원을 에세이로 읽을 때가 생각났다. 물론 그 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맘 먹은대로 살아요'를 만났을 때의 감동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그 책은 나에게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원이 주는, 나무나 꽃이 인간에게 주는 무한한 에너지를 알게 되었고 베란다 정원을 가꾸고 있는 나에게, 식물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달까, 그랬다.

 

ㅡ인상 깊은 구절

식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각자의 생장력으로 영역 싸움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고, 햇빛을 찾아 광합성도 해야 하고, 가뭄과 장마에도 버티고 살아야 하는, 보이지 않는 시련과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이파리의 생애입니다. 그 고난의 시절이 시작되기 전, 봄에만 보여주는 식물의 어린 잎들은 여리고 투명해서 물들지 않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청량한 기쁨이 있습니다.(48쪽)

 

어떤 분야, 어떤 일이든지 오랫동안 열심히 한 우물을 파다보면 거기에서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기쁨을 '중독된다', '아편 같다', '엔돌핀이 돈다' 등등의 표현으로 부르고요.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은 그런 기쁨을 '러닝하이Running High'라고 하지요. 정원일도 똑같습니다. '가드닝하이Gardening High'가 있으니까요.(88쪽)

 

"좋은 공간은 단지 수목만 빼곡히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주거가 같이 호흡해야 한다. 그 주거 형태는 유럽과 같이 대저택을 소유한 장원이 아니라, 평상의 주택과 주변 수목이 함께 어우러진 정원 형식이어야 한다. 그 정원을 알고 이해하며 생명과의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한나절 둘러보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룻밤을 묵으며, 달빛 어린 나무그림자를 보아야 하고, 새벽안개에 드리워지는 아침햇살과 아침이슬에 신발을 적셔 보아야 한다. ㅡ민병갈" (98쪽)

 

"그래! 나도 내가 군대에 갈 무렵에는 몰랐었지만,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알 때쯤이면 이 초록의 짙고 여림과 은근한 번짐에 눈물 날 때가 있을 것이다." (108쪽)

 

정원사는 기본적으로 흙과 땅, 나무와 풀을 알아야 하는 농부입니다. 그렇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디자이너(설계자)이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습니다. 지휘자는 오디션으로 단원을 선발하고 훈련해 자기 음악의 철학과 변주와 화음을 들려줍니다. 그처럼 정원사도 자기가 선택한 나무와 꽃과 풀을 통해 자기만의 미학과 자아 성찰을 일 년의 단위시간을 통해 보여줍니다. 길게는 몇 십년의 서사적 작품을 연출하는 정원의 지휘자이기도 하고요.(109쪽)

 

상록수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계절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난 겨울입니다. 너도 나도 모양과 때깔을 자랑하는 찬란한 봄도 지나고, 진초록을 자랑하는 여름도 지나고, 영광스러운 결실의 가을까지 나 지나고서, 이제야 '너도 초록이었구나'하고 상록수를 발견합니다. 잘난 이들 다 먼저 밀어주고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어렵고 힘들 때 같이 버텨주고 위안이 되는 나무들입니다. (...) 상록수는 찾아보면 세상에 제일 많은 존재, 바로 평범한 당신일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나서지 않으며 어느새 곁에서 다소곳하게 서 있는 당신입니다.(244쪽)

 

정원탐방은 거칠고 산만함에서 벗어나 머리를 맑게 하고, 생명에 교감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호기심과 즐거운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268쪽)

 

이 책은 아름다운 숲과 정원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도록 합니다. 숲과 정원에서 무엇을 느끼고 깨달을지 섬세한 감별법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풀, 꽃, 나무들 하나하나와 교신하면서 살아있는 그것들에 깊은 애정을 가져보기를 권유합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듯한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고 분란을 만들고 남에게 태연히 나쁜 짓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시가 있는 이유이고, 정원이 있는 까닭입니다.

지금 천리포수목원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울타리를 걷고 더 많은 이들에게 민병갈 원장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287쪽) ㅡ이보식, 추천사중에서

 

그리고 이 노랫말,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들 하나 없어도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헤치고 나가 끝내 푸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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