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25.
우리는 누구도 무사히 성장하지 않는다. –모씨
이 책을 읽고 싫은 문장 찾기 활동을 구상해보았다. 싫은 문장을 찾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활동이다.
P243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딜 가나 위가 있고 아래가 있다. 이걸 부정하는 건 네가 ‘똥덕’으로 바꾸고 낄낄거렸던 도덕 교과서뿐이다.
-> 뭐라 말할 수 없이 싫은 문장이다.
첫째로, 내가 아는 도덕책은 불평등의 기원부터 현대 철학까지 인간 불평등에 가장 관심이 많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도덕책은 안 읽어본 것 같다.
둘째로, 독자를 '너'라고 부르는 태도이다. 이 글은 20대 남 모씨가 썼는데, "난 세상 이치를 다 알고 넌 아무것도 몰라 "하는 태도는 가장 지양해야 할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교사 자료로 삼기 좋을 것 같다.
아마 읽는 내내 발끈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다. ‘계급’은 이미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안타깝지만 너희들이 자리 잡기 전에.
->구리다. 구려.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 뒤에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다"라는 말이 참 없어 보인다. 주장 뒤에는 근거가 나와야 하는데 이 사람의 글은 주장 뒤에 또 다른 주장을 나열하고 있는 실수를 하고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외감을 느끼는 무력한 젊은이의 안타까움은 백번 이해하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아무런 노력없이 글을 쓰고 있다. 근거를 마련하려고 하는 흉내만이라도 냈다면 좋았겠다.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냐
춤을 출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네가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 이 글은 처음에는 보고 좋다고 생각했다.
삶의 적극성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소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 글의 잘못된 점이 보였다.
첫째,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네'가 결정할 일이지 '나'가 할 일이 아니다.
둘째, '나'가 '네'를 많이 걱정하고 아끼는 선배나 스승일 수도 있다.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이 사람은 남들이 왜 이렇게 소극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극적인 사람은 조심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 소극적인 사람은 용기 없는 사람인 게 아니라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춤을 추어라" 인 것보다는 낫지만 이렇게 바꾸고 싶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 응원할거야 춤을 추든 추지 않든"
이 책에는 더 뭐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언젠가 나 혼자 해도 되는 수업이 있다면
비판적 독서 수업을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