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김미량 지음 / SISO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오리건 주에 사는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화를 풀고자,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한 여행보다는 가진 짐을 덜어내고자 순례길로 떠난다.

비우려 떠나는 여행에 최대한 가볍게 싼 짐에,

많은 정보를 찾지 않은 탓에,

판초(우의)가 없어 고초를 겪기도 하고 현금을 인출하지 못해 쩔쩔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길을 위한 것은 모두 길 위에 있다.

그녀는 뒤처지는 자신을 돌아봐주는 순례자, 우정이란 이름으로 5유로 지폐를 쥐여주는 순례자, 담백한 문장으로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례자를 모두 천사라고 부른다.

물론 하루 10시간이 넘는 행장에 발이 부르트고,

때로는 물에 흠뻑 젖고 바람에 부닥치고,

겨우 뉜 몸이 코골이 사중주에 괴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푹 자려고 떠나온 곳이 아니기에

편하게 관광이나 하려고 떠난 여행이 아니기에

신발 끈을 고쳐 묵고 묵묵히 걸어나간다.



21년 전 이민자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해 완전한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자문하게 되는 삶이란, 내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할 것이다.

그런 그녀가 온전히 ‘나’이자 여전히 한국인이고 한 명의 여성이며 이제는 ‘좋은 어른’까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용기에는 길 위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탈진이야말로 정서적 안정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시기와 이유를 속단하진 못해도 한 번은 저 길 위에 서 있을 나를 짐작한다. 여전히 나는 내가 애틋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삶은 어렵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법은 도통 모르겠다. 그리하여 두 손 모아 갈망하는 것이 ‘더 나은 나’에 그칠 수밖에.


비록 함께 걷진 않았지만 200여 페이지를 따라 그녀의 여정에 가만히 스며 들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순례를 끝낸 그녀가 “먼저 지금의 나를 단단히 만들어 비로소 건강한 가족, 사회를 이루고 싶다."라고 바라고 있어서. 그 길 끝에 남은 것이 나 하나가 아니라, ‘모두’이기 때문에.


당장 순례길을 걷지 않는 우리도 저마다의 힘듦을 지고 산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마음 한 조각을 겨우 붙들어 놓은 채 살고 있다.

부디, 우리가 자신을 귀하게 여길 수 있길.

내 삶이 애틋해서 남의 삶도 소중하다 말할 수 있길.

그렇게 차오른 힘을 기꺼이 세상과 나눌 수 있길.


모두,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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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량 2019-08-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피님,
안녕하셔요? 김미량입니다. 저는 지금 아침 6시이고 습관처럼(ㅋㅋ)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둘러보다 소피님의 리뷰를 읽고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어 몇 줄 남깁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태평양 바닷가 작은 포구 마을은 아침이면 구름이 산이며 바다를 덮어 편안한 시작을 선물하는데 소피님의 리뷰까지 읽으니 이보다 더 의미있는 선물이 없네요.

말씀하신대로 저마다 늘 뭔가에 도전받으며 힘듦을 헤쳐나가려고 애쓰죠. 저 역시도 1월부터 뜻하지 않은 긴 실업이 계속되던 상태라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순례길 이야기를 다듬으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었고 책이 나온 뒤로는 낯선 이들이 남긴 따뜻한 글들이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네요.

프랑스 순례길이 제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제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순간에 모든 것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게 다가 와 말을 걸었던거 같아요. 그 다음해에 포르투갈 순례길을 걸었을 때는 처음의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올라!가 어느 순간이나마 소피님께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래봅니다.

한국은 폭염이 계속된다는데 건강하게 보내시고요.

그럼 또.
김미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