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 - 삶이 괴롭기만 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미나미 지키사이 지음, 김영식 옮김 / 샘터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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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 나는 "삶은 괴로운 것이네요"라는 전제 쪽이 수긍하기 쉽다는 말이다_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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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매해 자살율 1위인 나라다.
특히 주변으로부터 '행복하다', '기쁘다'는 긍정적인 말보다
'힘들다', '다 그만두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훨씬 더 자주 듣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요즘엔
그 사실을 훨씬 더 실감하곤 한다.

<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는 나에게
마치 이들의 고민을 한데 모아 토로하는 듯
'자살'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담담한 이야기를 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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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는 '개성을 중시하자', '자아실현을 하자'라고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무언가 '특별한 자신, 특별한 온리 원'이 
꼭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지 않을까_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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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삶은 소중해' 라든가 '삶은 단 한 번 뿐이야'와 같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귀담아 듣지도 않을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말의 품격> 읽기를 마쳐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저자 미나미 지키사이가 책을 통해 보이는 태도는
말에 품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닌 태도 중
특별히 '경청'과 '공감'에 정확히 들어맞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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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로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고민과 함께 찾아왔을 때,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훨씬 홀가분한 표정으로 절을 떠났다는 저자의 고백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청과 공감의 힘을 더욱 더 강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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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_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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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거라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당신은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거라고.
삶 자체가 귀중한 것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귀중한 거라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거나
상실감에 빠져 우울하고 공허한 사람들이 있다면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살며시 <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를 권하고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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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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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좀 너그러워져볼까. 다른 사람이 그렇게 안 해주면 나부터 좀 그래볼까(26).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과정을 이렇게 솔직하게 적은 책이 과연 존재할까?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빼고. 숨 가쁘게 달리다 의도치 않게 멈춤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불안해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거나, 편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안 하거나. 솔직하게 말하면, 김신회 작가님처럼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만 같이 여겨져서. 그런데 김신회 작가님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 되었을 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책으로 묶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구나>라는 책으로 말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라고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 서술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생기는 불안이라는 녀석 때문에 남들의 시선에 맞춘 ‘성공적인 삶’이라는 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우리니까. 열심히 살면서도 불안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안해하는, ‘쉴 줄을 모르는’ 현대인들. 그런 우리에게, 김신회 작가님은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를 괴롭히는 법만 배운다면 미래의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이만큼이나 살아온 내 인생이 허무해지잖아(6).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생산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낸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운다(89). 생각해보면 나는 나에게 참 못되게 군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타인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그걸 수락할 시간은 없을 텐데도 몸 생각하지 않고 꾸역꾸역 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속 작가님의 모습에서 가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런 나에게 작가님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걸, 칭찬하는 걸, 그동안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고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는 걸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는다. 이제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설혹 좌절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나라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146).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를 읽는 내내 행복했다.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책 속에서 느꼈기 때문일까. 이왕 쉬는 거 제대로 쉬고, 불안에 떨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결정을 했다는 걸,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걸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때론 후회해도, 끝까지 나를 믿었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으로 인해 각자가 세상의 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295).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데 이 책이 그 여정의 시작을 함께해주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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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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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사랑은 썩지 않는 것이라고, 시간과 퇴색에 내력이 있다고 믿었다(102). 열아홉 살의 폴은 대학생으로, 여름방학에 맞춰 부모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어머니에 의해 테니스 클럽에 반강제로 입성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을 한 여자를 만난다. 이렇게만 보면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둥 온갖 호화스러운 수식어를 갖다 붙여서 둘의 만남을 시작하고 기념할 평범한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소설 아닌가, 그리 평범할 리 없다. 상대는 마흔여덟 살이자 이미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유부녀 수전 매클라우드. 사랑과 진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나는 진실을 본다(142).


너는 아직 인생의 이론이 없고, 그 기쁨과 고통 몇 가지를 알 뿐이다. 그러나 너는 사랑을 믿고,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사랑이 어떻게 인생을, 실제로 두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224). 수전을 끔찍이도 사랑한 폴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함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였지만, 수전의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 그녀의 몸에 성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얼마 되지 않는 비상금을 털어 런던으로 향한 수전과 폴. 그곳에서 사람들의 눈과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폴은 차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다시 분명해지고 합리적이게 된 폴(224). 수전이 술을 입에 달고 살고 서서히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가자, 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끝내 좌절하고 분노한다. 무력감, 좌절감에서 나온 분노가 너를 압도한다. 무엇보다도 최악은, 이게 정당한 분노라는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의 정당함을 증오한다(283). 끝내 자신마저 증오하게 된 폴. 과연 폴은 어떠한 선택을 내리게 될까?


‘인생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니면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어느 것이라고는 결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368).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은 일흔 즈음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는 이 책이, 진행되면 될수록 화자가 ‘나’에서 ‘너’로, ‘너’에서 ‘그’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의 패기와 당당함으로 나이를 뛰어넘고 사람들의 경악 속에서 이어나갔던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나’로 이야기를 하다가, 갈등이 시작되었을 즈음부터는 ‘너’라고 표현하며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듯 진행하다 <연애의 기억>은 ‘그’로 끝을 맺는다. 가슴 아프지만, 덤덤한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처음 함께했을 때의 그녀를 알고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그들 둘 다에게, 마지막 의무라는 것. 그런 순수의 얼굴이 훼손되기 전(294). 어떻게 보면 시작할 때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던 <연애의 기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각자의 연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각자 상황이 모두 다 다를지는 몰라도, 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행복감과, 관계에서의 불화,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을 겪는 화자의 심리적 묘사와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과거의 내 이야기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수전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대실패로 끝났다 해도,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아예 시작도 못했다 해도, 처음부터 모두 마음속에만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이야기였다(341). <연애의 기억>을 통해 누군가의 단 하나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조용히 나만의 이야기를 되살려봤다. 사랑에 심취했고, 사랑에 푹 빠졌었고,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화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더 신빙성 있는 듯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작가가 <연애의 기억>을 통해 던지는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려 애를 쓰다 보니 어느덧 끝이 났다. 사랑을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13). 초반에는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는데, <연애의 기억>을 다 읽고 나니 대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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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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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격이 무뚝뚝하고 거칠었지만 미코시바는 그에게서 속죄의 의미를 배웠다. 자신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내린 것도 이나미 덕분이었다. 그런 이나미가 사람을 죽이다니. 꿈에도 상상 못 할 일이다(55). 법정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최악의 변호사’라는 호칭을 가지게 된 미코시바 레이지. 덕분에 무척 높은 수의 승률을 가지게 되어 변호 잘 하는 변호인으로 유명해지게 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뒷말 많고 소문 나쁘기로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다. 한편, 어린 시절 한 소녀를 죽이고 소년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시체 배달부’라는, 변호인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이름까지 얻게 된 미코시바. 신임이 떨어져 의뢰 수도 점점 떨어져가는 그에게, 갑작스러운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자신을 갱생시킨 과거의 교관이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사건에서나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미코시바. 마치 불나방처럼 사전조사 없이 그 일에 무작정 뛰어든다. 구해줄 것 같다, 로는 안 된다.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이며(141).


그런데 이나미는 변호사를 만나기 전부터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처벌을 원한다는 말까지 법정에서 말한다. 자신에게 살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변호인 미코시바를 탐탁지 않게 보는 판검사들에게 악영향을 주어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주의를 주려 했던 미코시바.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처벌받기를 원하는 의뢰인. 지금껏 수많은 안건을 맡아 왔지만 이번 의뢰인이 떠올릴 수 있는 의뢰인 중 가장 최악이다(110). ‘최악의’ 의뢰인이자 자신을 갱생시킨 이나미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쓰는 미코시바.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미코시바가 알지 못하도록 숨기려 하는 이나미. 평판 나쁘기로 유명하지만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는, 과연 그의 은인이자 평생을 속죄해야하는 대상인 이나미를 구해낼 수 있을까?


속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러니까 참회를 말로 하지 마라. 행동으로 보여(275). 이런 가르침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전직 교관이 살해를 저질렀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은수의 레퀴엠>. <추억의 야상곡>을 통해서 미코시바 변호사를 처음 만났던 나로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전작을 읽어보면서 궁금했던 그의 과거를 더 자세하게 아는 데 도움을 주어 <은수의 레퀴엠>이 반가웠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정을 붙일 수 없었던 미코시바 변호사의 사람다운 모습과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 듯한 인상을 여러 번 준 <은수의 레퀴엠>. <추억의 야상곡>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어느덧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은수의 레퀴엠>. 아직 읽어보지 못한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맨 처음인 <속죄의 소나타>의 후속 느낌인 <은수의 레퀴엠>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와 관련된 설명이 미코시바의 독백이나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읽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미코시바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속죄의 소나타>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언제나 음악이 등장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언제나 끝을 알 수 없고, 결말을 예상할 수 없을뿐더러 복수와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라 한 번 손에 잡으니 놓을 수가 없었다. 혹,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고 해도 그 결말을 향해 미코시바 변호사와 함께 수사해나가는 과정과 그의 비범한 머리에 감탄을 연발하다 보면 어느새 <은수의 레퀴엠>에 푹 빠진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잔인하지 않고 수사 과정에 흥미를 느껴 계속 찾게 되는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은수의 레퀴엠>이 시리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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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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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니다. 내가 불행에 빠진 이유는 단순히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347). 다지마 가즈유키는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두어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동네에서는 다지마 가의 누군가가 할머니를 독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이 커져 가정은 깨어지고, 가즈유키는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에게 나름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구라모치 오사무였다.


구라모치가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돈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가장 다루기 쉬운 상대, 그것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121). 구라모치와 함께한 이후로, 이상하게 가즈유키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려 애쓰지만,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들. 어린 시절에 구라모치를 따라 간 오목집에서는 사기를 당해 제법 큰돈을 잃었고, 할머니 지갑에 손을 대기까지 한다. 좀 더 자란 이후에는 가즈유키의 이름 앞으로 저주의 편지가 오게 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그 이후로 가세는 기운다.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던 여학생은 가즈유키와 만난 이후 자살을 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다단계와 주식사기에 손을 댄다.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구라모치를 향한 원망과 살인의 욕구가 자리를 잡아가고 커지고 있던 찰나, 자신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 구라모치라는 것을 알게 된 가즈유키. 과연 그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고 ‘살인의 문’을 열게 될까?


그때 뇌리에 떠오른 녀석이 구라모치 오사무였다. 구라모치는 당해도 싼 놈이라고 생각했다(123).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답답한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가즈유키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어, 번번이 당하는 그의 무력한 성격과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모습에 계속 한숨이 나왔다. <살인의 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구라모치를 ‘악의 화신’, 악의 축으로 보았다. 하지만 구라모치의 권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오목집에서도, 저주의 편지도, 다단계와 주식사기 모두 다 가즈유키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구라모치를 원망하고 살인 충동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에 나는 더한 충동을 겪어야만 했다. ‘그냥 책 덮어버릴까’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바로 그 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계기가 없으면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죠(313). 평생 자신이 구라모치에게 농락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에서는 나도 소름이 돋았다. 초등학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남을 속이는 데는 타고났고, 영악하게도 가장 다루기 쉬운 아이를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심지어 어른이 되었을 때도 그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단지 그를 동경했고 그의 삶을 질투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그 누구의 편도 쉽사리 들어줄 수 없는, 어떻게 결론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 <살인의 문>.


어떻게든 작가를 이해하려 애를 쓰다 보니 내 마음대로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픽션의 세계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현실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원한과 케케묵은 감정이 워낙 옛날부터 얽혀있는 바람에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건사고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사건의 감정선을 <살인의 문>에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지만 피의자라고 알려진 구라모치의 시선에서 써졌다면 또 어떤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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